고전에 진심인 사람들
금동현 영화평론가와 박혜진 민음사 편집자의 고전을 대하는 태도에 관하여
글: 배동미(씨네21)
사진: 백종헌(씨네21)

* (왼쪽부터) 박혜진 편집자, 금동현 평론가
여기, 고전에 진심인 사람들이 있다. 김기영 감독에 깊이 빠져 <하녀: 하녀 따위에 흥미를 가져요?>를 펴낸 금동현 평론가와, 민음사에서 세계문학전집을 만드는 박혜진 편집자다. 두 사람이 천착해온 분야는 각각 영화와 문학으로 다르지만, 고전을 대하는 열린 태도와 감동이 찾아오는 순간을 향한 숭앙만큼은 닮아 있었다. 눈빛을 반짝이며 고전에 빠져든 경험부터 추천작까지, 주파수가 맞는 두 사람이 들려준 긴 이야기를 충실히 옮긴다. 이 대담은 추후 한국영상자료원 유튜브에도 공개될 예정이다.
| Q. 자기 소개와 함께 언제부터 고전에 관심을 두셨는지 말씀부탁드립니다. 계기가 된 작품이 있다면 언급해주세요. |
금동현 | 안녕하세요, 영화평론가이자 영화사 연구도 하고 있는 금동현입니다.
박혜진 | 안녕하세요. 민음사에서 해외문학 편집자로 일하고 있는 박혜진입니다. 저는 오늘 평론가님을 만나면 고전영화란 무엇인지 먼저 묻고 싶었어요.
금동현 | 고전이라고 하면 ‘고전주의’를 칭하는 경우도 있고 한편으로는 ‘정전’의 다른 말도 있어요. 영화에서는 고전적 할리우드 영화라고 해서 특정한 역사적 이념이자 장르 일반도 있거든요. 그렇다 보니까 저도 이 대담의 제안을 수락했지만 영화에서 고전, 혹은 정전이라고 했을 때 그 개념이 뚜렷할 수 있을까 의문이 있었습니다. 문학은 탄생한지 몇 천년된 장르인데 반해서 영화는 사실 130년밖에 안 된 장르잖아요. 한 시대를 되게 압축하는 어떤 요소가 있는 작품을 고전이라고 부른다면, 영화에 고전이 있을 수 있을까, 아직 영화는 고전을 갖지 못한 건 아닐까 이런 생각도 했거든요. 고전 영화라는 말을 어떤 특정한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걸로 받아들이기보다 ‘명작이라고 불리는 옛 작품들의 총체’ 정도로 느슨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태인 것 같아요, 지금은.
박혜진 | 클래식 반열에 오른 작품으로서요.
금동현 | 네. 그리고 제가 고전영화에 특별히 관심을 둔 계기가 딱 떠오르지 않는데요. 다만 어렸을 때 영화를 대체로 P2P 사이트에서 다운로드 받아 봤어요. 처음엔 B급 영화나 굉장히 폭력적인 영화를 많이 봤죠. 그런데 어떤 업로더 한 분이 굉장히 클래식 영화들을 모아서 올린 걸 봤어요. ‘사지절단’이란 이니셜을 쓰는 업로더였는데, 그 분의 라인업이 굉장히 좋았습니다. (웃음) 그중에 코르넬리우 포룸보이우 감독의 <그때 거기 있었습니까>란 영화를 보고 ‘아, 내가 알던 영화와는 다른 세계가 있구나’ 느꼈고, 자연스럽게 다른 옛날 영화들도 찾아보게 됐습니다.

박혜진 | 저는 꽤 모범생이었어요. 중고등학생 때 책을 되게 열심히 읽으려고 노력하고 필독서를 읽고 독후감을 써서 상을 받곤 했어요. 당시엔 고전이 ‘폼나는 책’이라 생각했지만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논술에 도움이 된다고 하니까 많이 읽었지, 와닿지는 않았어요. 스무살이 넘고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 다양한 경험을 하고 나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다시 읽었을 때가 고전에 빠진 계기인 것 같아요. 그때 ‘이게 이 뜻이었구나’라고 느꼈어요.

금동현 | 편집자님만큼은 아니지만 저도 문학을 좋아하거든요. 문학을 읽기 시작했을 때 자연스럽게 고전부터 읽었어요. 고전 세계문학전집은 책장에 꽂혀 있는 모습만 봐도 저 세계에 가고 싶다는 마음을 들게 만들잖아요. 하지만 고전영화에 접속하는 방식은 그것과는 다른 것 같아요. 사람들은 이미 영화를 보고 있고, 그러다 어떤 영화를 만났는데 그 영화가 지금까지 못 줬던 감정을 주거나, 어떤 이상한 감동을 줘서 정보를 찾다가 영화에 정전이라는 게 존재한다는 걸 깨닫는 듯해요.
박혜진 | 그렇네요. 문학에선 필독서나 <뉴요커> <뉴욕 타임즈>가 뽑은 고전문학 100선 등 리스트가 있잖아요. 영화의 경우, 먼저 봐야 하는 고전영화의 리스트를 들어보지는 못한 듯해요.
금동현 | <죽기 전에 봐야 할 영화 1001> 같은 리스트도 있긴 해요. 한국영상자료원에서도 리스트를 선정하고, 영국영화 잡지 <사이트 & 사운드>도 ‘위대한 영화’를 선정하고요. 사실 영화가 교양의 영역에 이른 것 자체가 1950년대 후반으로, 7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아요. 문학은 몇 세대, 심지어는 몇 문명이 지나도록 고전들을 가져서 문학과 영화 사이에 정전의 확고함에 있어 차이가 있다고 봐요.

고전과 시간의 상관관계
| Q. 금동현 평론가가 고전영화를 시기로 구분할 수 없다고 하셨는데 문학은 어떤가요. 몇 년작까지를 고전으로 포함할 수 있을까요. |
박혜진 |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1, 2번이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인데 2000년이 더 된 이야기예요. 하지만 이 전집에는 올가 토카르추크, 가즈오 이시구로처럼 이제 막 노벨 문학상을 타고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들도 소개되어 있거든요. 고전을 몇 년대까지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게다가 세계문학전집을 내놓는 출판사마다 차별화하고 싶잖아요. ‘우리가 정의하는 고전은 이거야’를 보여주기 위해서 확고한 고전의 지위를 누리는 작품 말고도, 조금 파격적이고 새로운 작품을 포함시켜요. 괴테처럼 고전의 지위에서 무너지지 않는 철옹성 같은 작가들도 있지만, 현존하는 작가 중 소개하고 싶은 작가들도 많고 세계문학전집에 소개되는 거죠.
물론 누군가 “고전 소설이 뭐야?”라고 묻는다면 저는 무조건 시간 얘기를 꺼낼 것 같아요. 해당 작품이 긴 시간을 견뎠고, 굉장히 오랫동안 사랑받고 인정받았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서야 제대로 평가받고, 시간이 흐른 뒤에 완전히 다르게 보였다는 의미에서요. 『레볼루셔너리 로드』를 영화로도 책으로도 봤는데, 작가 리처드 예이츠는 사실 당대에는 거의 사랑받지 못했던 작가였고, ‘작가들의 작가’로만 불렸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해서 호명되고 독자들이 읽고 또 다시 평론가들이 평하면서 정전의 반열에 오른 작가예요. 그런 것처럼 고전은 시간과 떼레야 뗄 수 없지 않을까요.
금동현 | 말씀하신 내용에 동의하는 한편 의아하기도 해요. 세계문학전집이 계속 권종을 늘려가는 게 자연스러운 순리지만, 한편으로는 ‘그레이트 북스’ 강의는 50권, 100건 등으로 권수를 딱 정해두기도 하잖아요. 그런 식으로 권수를 정해두는 고전과 세계문학전집을 계속 늘려갈 때의 고전은 같은 어휘이지만 의미가 조금 다른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박혜진 | 말씀하신 게 되게 중요해요. 하지만 시간성 안에서 뺄 수 없는 게 시의성이라고 생각하는데, 세계 문학 편집부에 있으면서 많이 받는 연락 중에 하나가 “여성 작가 작품이 너무 없다”라는 거예요. 이제까지 활동해 온 작가들 그리고 계속 연구가 이루어진 작가들이 남성 작가들이 많다 보니까 그럴 수밖에 없는 수순인데, 그렇다고 저희가 “여기서 문을 닫기로 하자”라고 말을 할 수가 없는 거예요. 최근 떠오른 키워드 중 ‘재발견된 클래식(rediscovered classic)’이란 장르가 있는데, 여기에 여성 작가들이 쓴 작품들이 많아요. 여성 작가들의 경우, 시대 상황 때문에 교육을 계속 받을 수 없고, 안정적으로 글을 쓸 수 있는 경제적 바탕이 없다 보니 대개 ‘원히트 원더(one-hit wonder)’예요. 진짜 좋은 작품 하나를 남기고 사라져서 연구자들도 연구할 게 없으니까 후속 연구도 이루어지지 않고 문학사에서 사라져 버리는 거죠. 그 작품들을 지금 보아도 정말 시의성이 있거든요. 그렇다면 저희가 그를 발굴해서 세계문학전집에 싣는, 어떠한 합의를 이루어내는 과정 자체가 중요하고, 지금 저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니까 고전 100권, 200권으로 닫아두기보다 우리가 읽어야 할 책이 무엇인가를 계속 고민하고 소개하는 것 자체가 중요해요.
| Q. 고전과 시간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고전의 내용적인 측면으로 들어가보면 어떨까요. 고전 작품이 다루는 소재는 너무 다양하겠지만 인간 영혼에 울림을 준다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외에도 고전만의 내용적 특수성은 무엇일까요. |
금동현 | 비교문학자 프랑코 모레티가 “문학에서 최대의 비평 기구는 시장이다”라고 말한 적 있어요. 많이 읽힌 도서가 정전이 된다는 얘기죠. 소설가 밀란 쿤데라는 “가치의 역사가 있어서 형식이 바뀌어도 다른 맥락에서 그것들이 보편 기구로 작동을 한다”라는 식의 얘기를 했어요. 두 가지를 염두에 두면 어떤 한 시대나 문명을 잘 압축하는 작품이 분명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작품을 보면 그 시대를 살지 않았더라도 내가 그때를 추체험할 수 있어요. 영화의 경우에는, 형식적인 차원에서는 특정한 형식을 발견한다면 작품이 담고 있는 내용과 무관하게 정전의 지위에 오르게 경우도 있는 듯하고요.
박혜진 | ‘순수하게 고전으로서의 파워를 어디서 느끼는가’ 생각해보면 말씀하신 것처럼 시대상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어서 시대적 징후를 완전히 한몸으로 갖고 있는 작품들이 있다고 봐요. 예를 들어 가수 보아의 음악을 들으면 그 시대가 생각나는 것처럼요. 마찬가지로 저도 사람들이 찾는 고전은 ‘개괄하는 힘’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얼마 전에 작가 이반 투르게네프의 『사냥꾼의 스케치』를 편집했는데요. 거기에 "노래꾼들"이란 단편이 실려있거든요. 세 사람이 술집에서 노래 대결을 하는 이야기예요. 한 사람은 기세가 부족해서 빠지고, 두 명이 노래 대결을 하게 됐는데, 근본적으로 노래는 글로 다 받아 적을 수는 없잖아요. 귀로 듣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작가 투르게네프는 기가 막히게 두 사람의 노래 스타일을 글로 표현해요. 한 사람은 찌르는 듯한 한방을 주어서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고 감동의 박수를 치게 되는 노래를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그런 한방이 없는데도 우수에 젖은 목소리 하나로 사람들의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올라오게 만들어요. 이처럼 투르게네프는 다른 예술의 스타일을 술꾼들이 노래하는 장면 속에 개괄적으로 담아내요. 그 장면이 진짜 압권이라 ‘고전을 쓰는 작가는 노래를 글로 받아적는구나’, ‘예술의 두 스타일을 이렇게까지 개괄하는구나’라고 배웠어요.
고전이라면 그런 개괄하는 힘이 있고, 그 힘은 보편성에 닿아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개괄 속에 작가만의 디테일이 작품의 스타일을 만드는 것 같아요. 디테일을 통해서 똑같은 주제를 가지고 있는 다른 고전들과 완전히 차별화되는 그 작품만의 스타일이 만들어지는 거죠. 또 하나 예를 들면, 정말 유명 고전인 레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유부녀의 불륜 얘기에요. 같은 소재를 다루는 작품은 수만권이겠지만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니나라는 인물을 그만의 독특한 필체와 문장들로 표현해요. 그의 외모를 묘사할 때도 이목구비를 언급하는 게 아니라 “그의 얼굴에는 절제된 활기가 있었다”라고 써요. 젊기에 생명력이 있지만 나이 많은 남자랑 사랑 없이 결혼해서 살아가는 여자의 표정을 톨스토이는 “절제된 활기”라는 말로 표현한 거에요. 이런 식으로 한 시대를 개괄하는 힘과 그 안에 세부를 펼칠 수 있는 능력, 이 두 가지를 가지고 있으면 사랑받는 고전 반열에 오르는 것 같아요.
| Q. 그렇다면 고전 반열에 오른 작품을 일방적인 해석 방식으로 보지 않는, 두 분만의 비판적인 감상 방법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아울러 이 작품은 왜 고전인지 모르겠다고 생각되는 사례가 있다면 용감하게 언급해주셔도 좋겠습니다. |
금동현 | 그런 말이 있잖아요. “고전이란 읽은 척하는 책, 본 척하는 영화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본 척하는 영화가 <대부>다.” 고전을 그걸 보기 전에 우리는 이미 그 작품이 어떻게 유명한지 알고 있고, 그 작품이 어떤 형식이고, 어떤 특수성을 갖고 있는지 이미 잘 알아서 그걸 직접 확인하려고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조금 무딘 거일 수도 있겠지만, 그같은 생각을 하고 봐도 고전은 대체로 고전이 된 이유가 어느 정도 있다고 느껴요.
박혜진 | 저도 그래요!

금동현 | 그래서 막상 고전문학을 펼치거나 고전영화를 보기 시작하면 그런 일방적인 해석들을 다 잊어버리게 돼요. 그리고 다 보고 나면 그 일방적 해석에 저항하고 싶은 요소가 항상 마음속에 하나씩은 생겨요. 예컨대 존 포드 같은 감독은 인종주의적이란 오명이 있지만, 그의 영화를 보면 그 오명을 뛰어넘는 요소가 있거든요. 박혜진 편집자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영화가 인간의 특수성에 가닿아버려요. 시대적이거나 사회적인 것 안에서 인간을 가두지 않아요. 쇼트 하나로, 한 인물이 등장시킬 때 보는 즉시 ‘진정한 인간이구나’라고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고전 아닌데’라고 할 만한 작품을 언급하기보다는 한국영화에는 고전이 거의 없다고 요즘 느끼고 있어요. 예컨대 한국영상자료원의 ‘한국영화100선(2024)’을 보면, 1위부터 10위까지 1990년대 이후 영화가 정말 많아요.(1위 <하녀>(김기영, 1960), 2위 <살인의 추억>(봉준호, 2003), 3위 <기생충>(봉준호, 2019), 4위 <오발탄>(유현목, 1961), 5위 <올드보이>(박찬욱, 2003), 6위 <바보들의 행진>(하길종, 1975), 7위 <시>(이창동, 2010), 8위 <8월의 크리스마스>(허진호, 1998), 8위 <헤어질 결심>(박찬욱, 2022), 10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홍상수, 1996) -편집자) 그렇다면 공동 8위에 오른 <헤어질 결심>(2022)이 고전인가. 저는 박찬욱 감독 영화 중에 <헤어질 결심>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고전인지 잘 모르겠거든요. 오히려 고전영화란 개념이 너무 헐겁다 보니까 인상적인 최근작을 고전으로 호명되는 것 같아요. 옛날 영화를 찾아보는 분들이 드물고, 저는 그렇게 만들어진 고전 리스트에 불만이 있어요.

박혜진 | 솔직히 고백하건대, 저는 고전을 비판적으로 읽는 건 평론가 몫이지 편집자의 몫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는 편집자로 일하면서 고전을 비판적으로 읽는 능력을 많이 기르지 못했어요. 다만 고전을 사적으로 읽으면 어느 정도 비판적으로 읽을 수 있다고 봐요. 예를 들어, 작가 레프 톨스토이가 쓴 『인간에게 많은 땅이 필요한가』라는 유명한 단편이 있는데요. 어떤 사람이 농사지을 땅을 갖고 싶다고 인디언 부족한테 말했더니, “네가 천 루블을 내고 하루에 걸을 수 있을 만큼 걸어서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오면 그 만큼의 땅을 주겠다”라는 말을 듣게 되면서 벌어지는 얘기에요.
그래서 주인공은 최대한 멀리 돌려고 하다가 쓰러져 죽어요. 욕심 때문에 죽음에 이르는 우매함을 톨스토이가 민중에게 가르쳐주기 위해 이 작품을 썼다는 해석이 가장 정설이죠. 제가 이 작품을 특별 에디션으로 만들면서 편집자 레터를 써야 했어요. 그 레터의 제목은 ‘인간에게 많은 땅이 필요하죠’였어요. 톨스토이는 대지주였고, 이 책을 지금 읽는 독자들은 그런 그가 교훈 삼아서 욕심이라고 정의하는 것에 크게 공감을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저 역시도 그랬거든요. 넓은 땅은 고사하고 국민평수에 다다르기도 어려운 삶인데, “네가 더 많은 땅을 가지려고 하느냐 이놈!”이라고 꾸짖는 이야기가 현대 독자들에게 와닿지 않을 것 같았어요. 저도 저절로 삐딱하게 보게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톨스토이의 다른 단편들도 읽어보니까 그가 말하고자 한 욕심, 소유의 함정이 비로소 넓게 보였어요. 그래서 저는 애써 이 작품을 비판적으로 봐야겠다고 작심하지 않지만, 지금 제가 서 있는 입장에서 작품의 메시지를 저절로 삐딱하게 보게 되는 경향이 있어요. 또 그걸로 말미암아 더 깊이 작가의 의도에 다가갈 수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고요.
금동현 | 저도 항상 고전은 사적으로 읽기에 굉장히 좋은 텍스트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비판적 읽기를 굳이 하지 않고 여러 고전들을 읽다 보면 고전에 대한 비판을 수행하는 다른 고전을 만나는 것 같고요.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고전을 읽기 마련이고, 그가 사적으로 읽은 걸 바탕으로 나중에 고전을 쓰잖아요. 예컨대 크리스타 볼프가 고전 속 메데이아를 비판적으로 읽고 쓴 고전 『메데이아, 또는 악녀를 위한 변명』처럼요.
| Q. 고전 문학을 영화로 옮긴 사례 중 걸작이라고 생각하는 작품이 있으신가요. |

박혜진 | 영화와 소설을 함께 보는 독서 모임을 하면서 영화 <거미 여인의 키스>, <오만과 편견>, <시계 태엽 오렌지> 등을 재밌게 봤던 기억이 있어요. 그 중에서도 <라쇼몽>이란 영화가 소설과 같으면서도 참 다르다고 생각해서 재밌었어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소설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두 단편 "라쇼몬"과 "덤불 속"을 가지고 영화 <라쇼몽>을 만들었는데요. 부부가 연루된 범죄 사건을 중심으로 각자 다 다른 기억을 주장하는, 기억의 주관성에 관한 얘기에요. 책으로 읽었을 때는 인물들의 입장에 공감이 갔어요. ‘사람들이 다 저렇지’라고 생각하면서요. 극단적인 범죄를 소재로 취하고 있긴 하지만 왼손에 자기 합리화, 오른손에 자기 연민을 쥔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기 입장에서 주관적인 시각을 진실이라고 말하는 모습을 너무 많이 보았고, 저 역시도 거기서 자유롭지 않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영화 <라쇼몽>은 흑백인데다 배우들의 연기도 과장돼 있어서, 감독이 사건의 전말을 다 파악하고 인물들을 시니컬하게 내려다보듯이 표현했단 느낌을 받았거든요. 두 개의 단편을 하나의 영화를 만들어낸 지점도 신선하지만 그 안에 감독만의 시선이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작품을 탄생시킨 것 같아서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금동현 | 저도 영화 <라쇼몽>을 좋아해요. 그리고 이 질문에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란> 또는 <거미의 성>도 떠오르네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 영화에는 문학을 영화로 가져왔을 때 이상한 정취가 있는 것 같아요. 이외에 또 언급하고 싶은 작품은 오슨 웰스의 <위대한 앰버슨가>인데요. 작가 부스 타킹턴의 소설이 원작인데 최근 휴머니스트에서 단행본이 출간됐어요. 처음 영화 <위대한 앰버슨가>를 봤을 땐 오슨 웰스 감독의 다른 영화들에 비해 좋지는 않았어요. 근데 소설이 정말 좋았어요. 소설 『위대한 앰버슨가』는 작가 나스메 소세키의 소설 『도련님』의 미국판 같은 작품이고, 당대에 인정을 못 받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워요. 귀족적이고 방만한 사람이 시대가 바뀌면서 추락하는 전형적인 이야기에요. 사실 오슨 웰스 감독의 영화 <위대한 앰버슨가>를 봤을 땐 뭔가 부족하고 비어있다고 느꼈어요. 오슨 웰스 감독은 워낙 걸작을 많이 만들었고, 첫 5분만 봐도 걸작을 찍는 사람이란 걸 느끼게 하는 연출자임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앰버슨가>는 조금 다르더라고요. 왜 이렇게 마음이 쓸쓸할까 싶었죠. 자료를 찾아보니 웰스가 이 영화를 굉장히 공들여서 만들었었는데 제작자가 40분을 잘랐다더라고요. 본래 120분이 넘었는데, 실제 영화가 88분으로 잘렸어요. 거의 반토막난 거죠. 그래서 영화가 어딘가 비어 있었고요. 원작 소설을 읽고 나니 오히려 그 빈 곳이 매워지더라고요. <위대한 앰버슨가>는 문학에서 문학이 영화로 잘 옮겨진 사례는 아닐 수 있는데, 오히려 책을 읽고 나니까 잘려나가지 않은 영화는 어땠을까 상상하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역설적으로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이 영화에 ‘굉장한 지점이 있었겠구나’ 혹은 ‘굉장한 지점의 흔적을 내가 쓸쓸함의 형태로 느꼈구나’하고 생각되어 흥미로웠어요.
| Q. 한국 작품 중에서도 문학과 영화를 오갔을 때 독특한 지점이 있는 사례를 꼽아 주실 수 있나요. |

*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03:21)
금동현 | 홍상수 감독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은 구효서 작가의 『낯선 여름』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예요. 그런데 영화는 소설과 아예 달라요. 소설을 영화로 옮기려고 하니까 안 돼서 감독이 등장인물들이 하루를 어떻게 보냈을지 스태프들한테 써오라고 했대요. 그런 다음 영화로 만들었고요. 방식의 특수성 때문에 생각나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정말 독특하게 잘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영화는 신상옥 감독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예요. 소설은 아이를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삼아요. 그래서 아이 혼자 오해하는 대목들이 재미를 주고요. 하지만 영화는 객관적으로 담기는 카메라가 개입하기 때문에 1인칭으로 찍을 수 없어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첫 장면에서 주인공 옥희(전영선)가 가족들을 한명씩 소개할 때 참 가슴이 아픈데요. “우리 엄마예요. 내가 그림을 잘 못 그려서 그렇지 이 세상에서 우리엄마처럼 예쁜 사람은 없을 거예요. 근데 내가 과부딸이기 때문에 우리 엄마도 과부랍니다.” 대사와 함께 카메라는 옥희가 그린 엄마 그림을 비추고, 실제 엄마(최은희)가 움직이는 모습을 담아요. 그런 다음 “난 아버지 진짜 얼굴도 못 봤어요”라면서 아빠를 소개하는데, 엄마와 할머니(한은진)는 정면인 반면 아빠는 측면으로 그려놓았어요. 옥희가 태어나기 한달 전에 죽은 아빠를 사진으로만 보았고 사진처럼 측면을 강조해 그린 거예요. 엄마와 할머니는 소개 끝에 그 인물이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비춘다면, 아빠는 사진으로만 등장해요. 이런 디테일은 영화가 3인칭이므로, 완벽히 1인칭으로 그릴 수 없다는 점을 깊게 생각해서만 나올 수 있는 연출이 아닐까 생각해요.
| Q. 마지막으로 고전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가치가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

박혜진 | 계속 고전을 읽고 소개하는 일을 반복하기 때문에 저한테 가장 필요한 건 사실 감동이에요. 제가 감동을 받지 않으면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입밖으로 잘 나오지 않아요. 그리고 제가 감동받지 않은 작품에 대해서 말할 때와 감동받은 작품에 대해 말할 때를 독자분들이 기가 막히게 구분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는 항상 감동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이에요. 그런 제가 보기에 고전은 굉장히 높은 확률로 감동을 보장해요. 작품이 견딘 시간 때문이든 아니면 오랫동안 많은 검증을 거쳤기 때문이든 이유가 무엇이든간에요. 금동현 평론가가 앞서 말씀하셨듯 고전은 고전이 된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라디오나 팟캐스트, TV 출연을 앞두고 밤새 책을 읽으며 ‘진짜 제발 하나만 나한테 감동을 줘’라는 심정인데, 어느 순간 어떤 한 문장에서 빛이 날 때가 있어요. 비유하자면, 음악 들을 때 너무 좋으면 눈앞의 풍경이 맺혔다가 풀리는 것 같은 순간이 있잖아요. 그런 것처럼 제 방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갑자기 무언가가 맺혔다 풀리는 듯하면서 문장이 빛이 나는 순간이 있어요. 그러면 저는 “유레카! 이번 주는 이거야”를 외치죠. 저는 그런 감동의 순간을 엄청나게 모아요. 그걸 바탕으로 고전문학을 소개하거든요. 많은 분들이 제게 “그 많은 책에서 다 감동을 받는 거냐”고 물어보실 때도 있어요. 저는 제가 소개하는 작품이 고전이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세계문학전집 팀이 아닌 다른 팀에 있었다면, 작품을 소개하기 위해서 지금의 몇 십배에 달하는 책을 읽어야 했을 거예요.
금동현 | 저도 쉽게 감동을 받는 스타일이에요. 그리고 고전영화들을 주로 보니까 ‘엄청 별로군’이란 생각보다 ‘굉장히 좋다’는 느끼는 지점을 꼭 발견해요. 저는 한국영상자료원 유튜브에 신작이 올라오면 항상 보는 편인데요. 마침 최근 올라온 임권택 감독의 <흐르는 강물을 어찌 막으랴>가 4K로 복원돼 올라왔으니 사례로 언급하고 싶어요. 임권택 감독의 작품 중에선 안 유명한 영화였고, 코로나 기간 때 의상감독 이해윤 전을 계기로 이 작품의 VOD가 올라온 적 있어요. 그땐 화질이 정말 안 좋았어요. 360p 정도였죠. 그런데도 저는 고전을 좋아하니까 ‘어, 내가 못 본 거네?’ 싶어서 봤단 말이에요. 화질이 안 좋으면 감동하기 어려워서 어느 정도는 방만한 자세로 봤죠. 그런데 영화 말미에 어두운 장면에서 캐릭터 한 명이 멀리서 막 달려오는 신이 있어요. 그때 자세를 고쳐 앉고 정말 몰입해서 영화를 봤어요. 그리고 2024년 6월에 한국영상자료원 ‘디렉터스 초이스: 임권택 B-side’ 기획전에서 이 작품이 상영되었을 때 직접 극장에서 보고 시네토크를 진행했는데 그때 압도적인 경험을 했어요.
그런 의미에서 많은 분들이 고전을 찾아보면 좋겠어요. 특히 한국 고전영화는 정말 어떤 해석도 없이 볼 수 있거든요. 넷플릭스와 같은 OTT에서 영화를 보거나, 아트시네마와 같은 예술영화관을 다니다 보면 작품을 보기 전에 너무나 그 많은 정보를 갖게 되어 관람에 방해가 될 때가 많지만, 한국 고전 영화, 그러니까 한국 옛날 영화를 볼 때는 그로부터 정말 자유로워요. 오히려 굉장한 발견의 기쁨을 누를 수 있어요. 어떻게 보면 역설적이고 안타까운 상태이지만, 관람자로서는 굉장히 해볼 만한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한국 고전영화는 자신만의 즐거움을 획득하기 위한 정말 좋은 수단이 될 수 있어요.
박혜진 | 최고의 사치죠. 이 작품이 갖는 위상과 줄거리를 모르고 진짜 그냥 그대로 따라가는 것!
| Q. 오늘 대담을 나누신 소감을 끝으로 인사말씀을 부탁드립니다. |

금동현 | 유튜브 <민음사 TV>도 자주 보기 때문에 연예인 같은 박혜진 편집자님이랑 대담을 할 수 있어서 영광이어요. 저는 모두가 평론가라고 생각하는데요. 자기를 거쳐간 작품에 대해 다른 해석을 할 수 있다면 누구나 평론가라 진심으로 생각해요. 고전은 굉장히 사적으로도 읽을 수 있고 중압감을 느끼며 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실제로 고전을 접하면 요즘 말로 "잼얘(재밌는 얘기)"거든요. 이런 지점을 왔다 갔다 하면서 즐길 수 있는 고전을 많은 분이 보셨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저도 외롭지 않을 것 같아요. 친구들을 만들 수 있으니까!
박혜진 | 평론가님이 제가 나온 영상 보신 것처럼 사실 저도 꽤나 서치했답니다. 근데 너무 똑똑하신 분인 거예요! 그래서 긴장을 많이 하고 왔거든요. 근데 실제로 뵈니 너무 말씀도 잘 들어주시고 잘 웃어주셔서 감사했어요. 그리고 장르는 다르지만 고전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동질감을 느꼈어요. 고전이 권위가 있다고 할 수도 있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사람들이 고전이 취향이라고 말하는 경우는 드물어요. 고전이란 권위는 있지만 외롭다고 느낄 때가 많은데, 문학과 영화로 장르는 다르지만 고전을 애호하시는 분을 만나서 정말 재밌었어요.

박혜진 편집자가 추천하는 고전문학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1774)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고전주의의 대표 작가 괴테의 초창기 작품이에요. 나이가 들 수록 괴테의 형식미가 완숙해지다보니까 이야기가 점점 세련되지만, 이 작품엔 작가의 초기작만 가질 수 있는 파괴적인 힘이 있어요. 고전 중에 고전이면서도 날 것의 재미를 줄 수 있는 작품이라 소개해드리고 싶어요."

박혜진 편집자가 추천하는 고전영화
미야자키 하야오의 <마녀배달부 키키>(1988)
"동화나 애니메이션의 특장점이 진짜 중요한 얘기를 쉬운 논법으로 한다는 거예요. 세부가 많은 것도 아니고 승화된 개념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우리 삶에서 마주칠 수 있는 중요한 얘기를 쉬운 문법으로 얘기하는 거죠. <마녀배달부 키키>는 마녀라는 운명을 아이 스스로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중요한 문제를 다뤄요. 그리고 동시에 그 직업이 점점 힘을 잃어가는 사회에서도 꿋꿋이 무언가를 해나가고 일상을 꾸려나가는 이야기에요. 제게 힘을 주는 영화라 소개하고 싶어요."

금동현 평론가가 추천하는 고전문학
최인훈의 『서유기』(1966)
"최인훈 작가하면 <광장>을 고전으로 많이 꼽잖아요. 저는 오히려 그의 베스트는 연작소설인 <회색인>과 <서유기> 같아요. 그 중에서도 <서유기>를 추천하고 싶어요. 완전한 사변소설이고, 최인훈 작가가 유럽이나 러시아와 같이 문학을 창출하는 유력한 문명과 한국의 차이가 뭘까를 깊게 생각하며 쓴 작품이에요. 이렇게 말하면 재미 없을 것 같지만, 주인공이 꿈에서 이순신을 만나고, 논개도 보는 등 굉장히 재밌어요.
중간에 극처럼 전개되는 부분도 있어서 형식적으로도 다양한 시도가 있고요. 유명하지는 않은 작품이지만 아카이뷰 독자들께서는 좋아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금동현 평론가가 추천하는 고전영화
신상옥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
"AI 영화의 클립들을 본 적 있어요. 세게 때리거나 폭발이 일어나는 장면은 AI가 좀 제법 잘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오히려 섬세한 감정을 그리는 건 AI가 못할 것 같아요. 영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를 다시 한번 추천하고 싶은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에요. 영화의 내용은 널리 알려져있으니까 연기에 집중해서 보면 굉장히 재밌을 거예요.
선생님(김진규)과 옥희, 그리고 어머니, 세 사람이 거리를 두고 논두렁을 걸어가는 긴 장면이 있는데요. 옥희가 열이 난다고 말하니까 거리를 두고 뒤에서 따라오던 어머니가 종종걸음으로 달려와요. 선생님이 옥희를 업고 어머니가 가방을 들어주려할 때, 사이 좋은 모습을 보이면 안 되기에 서로 주저하거든요. 그 동작이 정말 아름다워요. 이 작품에서 어머니의 머리카락이 은유적으로 사용되기도 하는데요. 영화 말미에 선생님이 떠날 때 옥희가 "엄마, 아저씨 정말 가?"라면서 안겨요. 그때 어머니의 머리가 흐트러지는데요. 거울로는 머리카락이 잘 올라가 있는 모습이, 카메라 쪽으로는 조금 내려와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비쳐요. 옥희보다 더 울고 싶은 어머니의 마음을 하나로 압축하는 신상옥 감독의 연출이 빛나는 장면이라고 생각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