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Memoriam 영화라는 존재, 안성기
한 배우가 건너온 한국영화의 시간과 그를 기억하는 동료들의 말
글: 정종화(한국영상자료원)

앞으로 한국영화계에 이런 배우가 다시 존재할 수 있을까.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에 걸쳐 한국영화가 르네상스를 일구던 시절, 그는 재능 있는 아역으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후 대학과 군 복무로 이어진 청년기에는 스크린을 잠시 떠나 현실의 삶을 개척한 뒤 복귀해 1980년대 한국영화의 새로운 물결 ‘코리안 뉴웨이브’의 얼굴이 되었다. 1990년대 이후에는 ‘뉴 코리안 시네마’가 자리 잡고, 한국영화가 지금의 모습을 갖추는 데 든든한 기반이 됐다. 10년 남짓의 공백을 제외하면, 그는 7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배우로 살았다. 그 긴 세월 동안 안성기는 오로지 영화에 전념했고, 영화계는 물론 사회에도 조용한 온기를 불어넣었다. 그는 우리 곁을 떠났지만, 한국영화의 전무후무한 국민배우로 끝내 남을 사람—그가 안성기다.
안성기는 1957년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로 아역 데뷔한 뒤 1969년 <애수의 언덕>까지 70편이 넘는 작품에 출연하며, 소년에서 청소년으로 자라나는 시간을 스크린에 투영해 한국영화에 생기를 더했다. 첫 촬영 현장에서부터 천연덕스런 연기를 보여 김기영 감독의 신뢰를 얻었다고 전해지는데, 그의 출연작이 김기영 감독의 초기 필모그래피와 겹치는 배경이기도 하다. 특히 <10대의 반항>(1959)에서는 불량소년 역으로 시선을 붙들며 샌프란시스코국제영화제 등에서 아역 연기상을 받았다. 아쉽게도 이 작품은 현재 필름이 남아있지 않지만,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그의 가장 앳된 얼굴은 <모정>(양주남. 1958)의 신오 역으로 전해진다. 아역 안성기의 능청스러운 모습은 <하녀>(김기영, 1960)와 <언니는 말괄량이>(한형모, 1961)에서도 또렷하게 이어진다.
성인 연기자로서 안성기의 존재가 다시 각인된 순간은, 이장호 감독에게도 재기작이었던 <바람불어 좋은 날>(1980)의 덕배를 통해서다. 그는 중국집 배달부로 고단한 삶을 견디는 하층 청년을 온몸으로 살아내며, 엄혹한 시절의 한가운데서 ‘새로운 한국영화’가 조심스럽게 숨을 틔우고 있음을 관객에게 알렸다. 1980년대 내내 배창호 감독이 한국 대중영화의 품위를 쌓아 올릴 때, 안성기는 배창호의 영화와 가장 빛나게 호흡하는 페르소나가 되었다. 특히 <기쁜 우리 젊은 날>(1987)에서 지고지순한 사랑을 하는 영민 역은 실제 그의 성품을 보여준 대표적 역할일 것이다. <만다라>(1981), <안개마을>(1982), <적도의 꽃>(1983), <깊고 푸른 밤>(1985), <성공시대>(1988)로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그는 매번 다른 얼굴로 시대의 결을 통과했고, 그 과정에서 남우주연상은 성과라기보다 자연스러운 귀결처럼 따라왔다. 그의 필모그래피는 임권택·이장호·배창호로 시작된 코리안 뉴웨이브의 원류에서 박광수·장선우·이명세·정지영으로 이어지는 본류까지를 한 몸으로 건너며, ‘새로운 영화’의 정신을 살아 있는 인물로 거듭 체현해냈다.

▲ <라디오스타>(2006) 박민수 역, 안성기
1990년대에는 코리안 뉴웨이브 감독들과의 협업을 이어가며, 한국영화가 산업으로 안착해 가는 변화 속에서도 사회와 역사를 외면하지 않는 시선과 미학적 긴장을 함께 지켜냈다. <투캅스>(강우석, 1993), <퇴마록>(박광춘, 1998), <무사>(김성수, 2000), <실미도>(강우석, 2003)로 이어지는 상업영화의 확장과 <하얀전쟁>(정지영, 1992), <태백산맥>(임권택, 1994), <아름다운 시절>(이광모, 1998) 같은 작가주의 영화의 결은, 배우 안성기의 궤적 안에서 서로 분리되지 않았다. 특히 그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이명세, 1999)를 계기로 조연—말 그대로 후배 연기자들을 받쳐 주는 ‘서포팅 액터’—로까지 활동의 범위를 넓혔다. 그러나 그 선택은 돌연한 변신이 아니라, <안개마을>(임권택, 1982)처럼 인간 본능의 심연을 드러내는 얼굴까지 이미 넓게 구축해 둔 연기 스펙트럼이 있었기에 가능한 확장이었다. 2000년대 이후 ‘사람 안성기’의 결이 가장 선명하게 비치는 작품으로는, 그가 생전에도 애정을 드러냈던 <라디오 스타>(이준익, 2006)에서의 매니저 민수 역을 빼놓기 어렵다. 박중훈과의 호흡은 과장되지 않은 온기와 절제 속에서 조화를 이루며, 그가 한국영화 안에 남긴 품을 증명했다.

그는 우리에게 170편이 넘는 극영화 출연작을 남겼다. 영화에 대한 그의 열정이 연기에만 머문 것은 아니다. 그는 한국영화를 지키고 알리고, 독립영화를 돕고, 영화 밖에서도 선한 영향력을 전하기 위해 애썼다. 1993년부터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친선대사로 활동하며 후배 연기자들에게도 모범이 되었고, 1998년부터 한국영상자료원 이사, 2003년부터 스크린쿼터 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으로도 역할을 맡았다.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집행위원장과 부산국제영화제 부집행위원장,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장으로도 오래 활동했다. 그는 영화에 진력을 다했고, 영화계를 위해 자신에게 맡겨진 역할이 있다면 마다하지 않았다. 한 인간으로서, 남편이자 두 아들의 아버지로서 땅에 발 딛고 사는 삶 또한 소중히 영위했다. 그는 훌륭한 배우였고, 선한 사람이었고, 보기 드문 좋은 어른이었다. 어쩌면 앞으로도 우리는 그만큼 ‘국민배우’라는 말이 어울리는 이름을 찾기 어려울지 모른다.
"한국 영화의 얼굴, 배우 안성기의 등장이다"

▲ (왼쪽부터) 배창호 감독, 안성기 배우
배창호 감독(<꼬방동네 사람들> <고래사냥> <깊고 푸른 밤> <기쁜 우리 젊은 날>)
“<깊고 푸른 밤>에서 안형이 공군 점퍼를 입고 호주머니에 손을 꽂고 LA 차이나타운을 걷는 장면이 있다. 스토리상 낙태약을 구하러 차이나타운에 갔을 땐데 슬로모션을 걸었다. 호빈(안성기)이 그냥 악당이었다면 그의 고뇌가 느껴지는 그 장면이 필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모습만으로 그의 입장을 관객들이 이해할 수 있었다. 사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은 <꼬방동네 사람들> 속 주석(안성기)의 모습이다. 직업을 얻겠다고 서울로 올라온 주석이 한국은행 근처와 신세계 백화점 앞을 돌아다니며 구직 판을 본다. 인물이 대사 없이 인파 속에 하염없이 걷는 몽타주의 마지막 컷으로 배우의 얼굴을 클로즈업했다. 그때 안형이 걷다가 허공을 지긋이 바라본다. 찍을 땐 몰랐는데 시간이 흘러 다시 보니 참 좋았구나 싶었다.”(배동미)

이준익 감독(<라디오 스타>)
"<라디오 스타>에 민수(안성기)가 김밥을 먹는 신이었는데, 그분께 "연기할 때 눈물이 좀 보였으면 좋겠다"라고 얘기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이 감독, 내가 눈물이 참 쉽게 나오지 않아. 다른 영화에서도 내가….”라며 말끝을 흐리셨다. “그러면 김밥을 우걱우걱 씹읍시다"라고 제안드렸다. 김밥 숏과 붙는 최곤(박중훈)의 숏을 먼저 찍어놨는데 저쪽에서 논물을 흘리며 감정을 표현하니까 이쪽에서는 감정을 약하게 표현하는 대비를 주기 위해 무표정하게 김밥을 씹자고 논의했다. 그래야 관객의 마음에 더 와닿을 테니까. 막상 촬영 현장에서는 성기 형이 김밥을 덤덤하게 씹었다. 하지만 이후 편집할 때 두 사람의 숏을 붙여놓으니까 덤덤한 게 아니라 가슴을 후벼 파는 장면이 되었다.
박민수가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라는 노래를 부르며 활짝 웃으면서 가방을 던지는 장면도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시나리오엔 "노래를 부르면서 다가오는 박민수. 알면서도 고개를 돌려 외면하는 최곤"이라고 쓰여 있었다. 성기 형이 "내가 우산 들고 있으니까 펴서 최곤에게 씌워주면 어떻겠냐"라는 의견을 냈다. 그렇게 그가 우산이 탁 펴는 순간 너무 멋있는 라스트가 완성되었다. 배우가 현장에 몰입하면서 발견한 찰나의 순간이 포착된 엔딩이었다. 감독인 나의 판단보다도 현장에서 비를 뿌리고 카메라를 돌리고 조명을 든 이런저런 스탭들이 일순간에 모두 감동했다. 일종의 마법 같은 시간이 배우에 의해 포착됐다."(배동미)

신연식 감독(<페어 러브> <카시오페아>)
“<카시오페아>에서 말없이 있을 때, 그냥 딸을 말없이 바라볼 때, 누군가가 자기 감정을 얘기할 거나 자기 고통을 얘기하거나 자기 기쁨을 얘기할 때 말없이 듣고 있는 선배님의 클로즈업이 참 좋았다. 실제로 안성기 선배님은 누군가가 이야기하면 조용히 바라보시고 들어주셨다. <페어러브>를 만들 당시엔 그런 일이 있었다. 제작사를 네 군데나 옮기고 몇 년 동안 선배님한테 “이 제작사에서 할 것 같아요”, “어느 투자사랑 할 것 같아요” 등 영화 비즈니스 얘기만 하고 감독과 배우로서 작품에 대한 얘기를 한마디도 안 나눴다는 걸 촬영 전날 깨달았다. 그때가 선배님이 이제 연기 인생 50주년 때라 “선배님, 50년 동안 어떤 현장의 방식들이 선배님 편하셨어요?”라고 여쭤봤더니 “나는 다 편해. 내가 맞춰주니까”라고 얘기하셨다. 그런 성격 때문인지 영화에서도 상대방이 대사하고 감정 표현을 할 때 조용히 듣고 계실 때 클로즈업이 다 좋았다. 남한테 뭔가를 강요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의 감정을 포용하고 흡수하고 계시는 게 느껴졌다. 내 영화 <카시오페아> <페어 러브> 속 선배님의 연기에서 유난히 좋은 장면들은 그가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듣고 있는 클로즈업이다.“(배동미)
심재명 명필름 대표(<부러진 화살> <화장>)
“안성기 배우님이 배창호 감독님과 13편을 같이 하셨는데 그중 <기쁜 우리 젊은 날>이 압도적으로 좋았다. 영민(안성기)이 낙심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아파트 놀이터에서 앉아 있으면 아버지(최불암)가 다가와서 “그 여학생이 그렇게 좋아?”라고 묻는 장면이 있다. 그러면 영민이 “네”라면서 아기처럼 아버지에게 기대 울음을 터트린다. 그 얼굴이 정말 좋았다. 그 신은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정원(한석규)이 자기 죽음을 앞두고 아버지(신구)에게 TV 리모컨 사용법을 알려주는 장면과 더불어 가장 아름다운 부자의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기쁜 우리 젊은 날>을 1987년 서울극장 겸 합동영화사 신입직원으로 다녔던 영화계 초년병 시절에 단성사에서 봤다. 한번이 아니라 여러 번 봤다. 그 시대에 영화 미학적으로 굉장히 뛰어난 카메라 워킹, 시대를 앞선 순애보적인 남성 캐릭터 등 여러 가지가 굉장히 새로웠고, 새로운 멜로 드라마의 출발을 알린 작품이라고 생각한다.”(배동미)

▲ <인정사정 볼것 없다>(1999) 장성민 역, 안성기
이명세 감독(<개그맨> <남자는 괴로워> <인정사정 볼 것 없다> <형사 Duelist>)
“(안)성기형과 <개그맨> <남자는 괴로워> <인정사정 볼 것 없다> <형사 Duelist> 네 편의 영화를 함께 작업했다. 성기형을 처음 만난 건 배창호 감독의 영화 <고래사냥>(1984) <안녕하세요 하나님>(1987)에서 조감독을 하면서다. 그 두 편을 하면서 형, 동생 사이가 됐다. 그 인연으로 데뷔작 <개그맨>에 성기형과 배창호 감독님을 황신혜 배우와 함께 주인공으로 캐스팅했다. 그때는 한번 마음이 통하면 계속 같이 일했던 시절이었으니까. 이후 네 편을 함께 했는데 그중에서도 (박)중훈이형과 함께 일했던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때 기억이 많이 난다. 고생을 정말 많이 하면서 찍었다. 특히 엔딩신은 살수차를 동원해 10일 동안 비를 뿌려가며 찍는데도 (안)성기 형은 단 한 번도 싫은 소리를 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꼽은 성기형 출연작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배창호 감독의 영화 <꼬방동네 사람들>에서 성기형이 처음 등장하는 신이다. 어떤 이유에서냐고?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아우라가 느껴진다. 코리안 뉴웨이브의 얼굴, 배우 안성기가 등장하는 순간이다.” (김성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