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기 전에 붙잡아둔 장면들
<미망>, <나만 아는 춤> 김태양 감독 인터뷰
사라지기 전에 붙잡아둔 장면들
<미망>, <나만 아는 춤> 김태양 감독 인터뷰
글: 배동미(씨네21)
사진: 최성열(씨네21)

극장에 가면 자주 마주치는 얼굴이 있다. 이름도 나이도 알 수 없지만 극장의 어둠에 묻힌 익숙한 얼굴이. 당신이 한국영상자료원(이하 영자원) KOFA를 자주 다닌 이라면 김태양 감독을 한번쯤 보았을지 모른다. 그는 꽤 오랜 기간 KOFA에서 일하며 티켓박스를 지켰고, 전작 <미망>과 차기작 <서울 이야기> 시나리오를 쓰는 동안에도 영상도서관을 부지런히 드나들었기 때문이다. 2026년 새해를 맞아 영자원과 연이 깊은 김태양 감독을 만났다. ‘아카이뷰’의 인터뷰 제안에 맑은 목소리로 반가워하던 그는 차기작 소식과 영화를 대하는 마음에 관해 소상히 들려주었다.
<미망>에 이어 이명하 배우님과 차기작 <서울 이야기>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이혼을 피하기 위해서 도망가는 아들을 찾아 시골에서 어머니가 상경하는 이야기라고요.
<미망>의 경우 젊은이들의 눈에 비친 서울이라면, <서울 이야기>는 노년 여성의 서울을 그리려고 해요. 이 영화는 어느 정도 제 삶에서 시작된 것인데, 저는 할머니와 함께 살았거든요. 저희 부모님이 이혼하려 할 때 할머님이 저를 데리고 부모님을 설득하러 다니셨어요. 물론 그 도시가 서울은 아니었지만요. 그때의 경험과 제가 서울에 올라왔을 때 느낀 감정들이 섞여 <서울 이야기>가 됐어요. <서울 이야기>는 할머니와 손녀가 아들을 수소문하면서 찾으러 다니는 이야기가 될 것 같고, 그게 할머니의 시점만이 아니라 아이의 시점으로 보이는 서울도 담길 것 같아요.
<서울 이야기>은 현재 얼마쯤 와있나요.
목표는 2027년 여름에 촬영하는 건데요. 3월에 다른 장편영화를 먼저 찍어요. 고경표, 강태우 배우가 세운 제작사 ‘필르머’로부터 옴니버스 장편 영화 연출을 제안받아, 제가 1부를 맡고 2부를 <화란>의 김창훈 감독이 맡았거든요. 이 작품을 저희끼린 앤솔로지 프로젝트 <패밀리 바이 블러드>(가제)라고 부르고 있는데, 지금 한창 준비하고 있어요.

두 연출자의 영화가 너무나 다른 느낌이네요.나이는 비슷하시죠?
동갑이에요. 그래서 잘 맞아요. (웃음)
작업 방식이 궁금합니다.
제가 이전에 써두었던 이야기가 있었어요. 그래서 옴니버스 영화로 제안을 받았을 때 그 시나리오 속 사건을 먼저 두고, 거기서 파생된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를 펼치면 괜찮겠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어요. 제가 쓴 시나리오 속 조연이 김창훈 감독님 영화에선 주연이 되는 거죠. 그렇게 쓴 전체 시나리오를 김창훈 감독님과 다시 한번 조율했어요. 제가 쓴 1부는 <집까지 무사히>라는 제목이에요. 김창훈 감독님의 2부는 <해나>라는 제목이고요. '해나'는 캐릭터 이름인데 해가 난다는 뜻도 있어요.
시나리오를 완성하는 데 얼마나 걸리셨나요?
한달 반 정도 걸렸어요. 오늘도 인터뷰가 끝나면 시나리오를 쓰러 김창훈 감독님 댁에 가요. 시나리오는 이미 나왔지만 배우들을 캐스팅하는 단계라 수정하는 중입니다. 독립영화다보니 사무실이 아직 없어요. 1월부터 서울영상위원회 입주제작사에 선정되어서 1월부턴 상암으로 출퇴근할 예정입니다.

▲ <서울 이야기> 대만 TCCF 피칭 현장 (출처. 인스타그램 @milkyway_cinema)
<서울 이야기>를 준비하시다가 앤솔로지 프로젝트를 제안받고, 김창훈 감독과 시나리오 작업을 하셨군요. 와중에 사무실도 마련하신 거네요.
분발하고 있어요. 열심히 준비하지 않으면, 제작 지원을 받거나 펀드를 받는 게 어려워서요. <서울 이야기>는 대만 TCCF에서 피칭하고 상을 받았어요. 그리고 베를린국제영화제 코프로덕션 마켓에서 피칭하면서 영화 속에 독일이 담겨야 해서 지금은 독일 독립영화 제작사와도 협업 중이에요. (<미망>의 촬영을 담당했던) 김진형 촬영감독님이 <달의 여행>이란 시나리오를 쓰셨는데 제가 공동 제작을 하면서 <패밀리 바이 블러드>가 끝나면 제작 일과 조감독 역할을 할 예정이에요.
전작 <미망>에서는 서울 풍경을 인상적으로 포착했습니다. 어찌 보면 주인공은 캐릭터가 아닌 서울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요. 반면 <패밀리 바이 블러드>는 인물 중심 서사일까요.
인물 중심이지만 역시나 공간이 중요할 것 같아요. 1부 <집까지 무사히>는 지방 어딘가에 화재 사고가 나서 주인공이 서울에서 지방으로 내려가면서 벌어지는 얘기에요. 주인공은 카메라 맨이고 사고 현장에 취재차 가는데, 그의 가족들이 해체되어 따로 살고 있어 걱정이 되는 거죠.
이전에 쓰셨다고 했는데, 얼마나 오래 전에 쓰셨나요.
10년 정도 됐어요. 당시 저는 뉴스 보도용 영상을 찍는 촬영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는데, 2016년 세월호 참사가 있었잖아요. 세월호 참사 현장을 촬영하러는 차마 못 갔지만 촬영하던 내 모습이 많이 생각나고 참사가 마음에 깊이 남았어요. 그걸 해소하기 위해 <집까지 무사히> 시나리오를 썼었어요.
고향이 지리산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고향에 내려갈 때면 물리적으로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그 경험을 녹여 시나리오를 구상했을까 했습니다.
제 고향은 지리산 뱀사골인데요. 물리적인 거리도 거리지만 심리적인 거리감도 있어요. 고향은 갈 때 긴 시간을 들여야 하고, 오랜만에 갈 수밖에 없으니까 너무 멀게 느껴져요. 그리고 막상 가면 정말 많은 게 바뀌어 있고요.
<미망>을 다시 보니 제가 처음 서울에 왔을 때 종로 일대를 감각하는 방식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울엔 사람이 너무 많고 계속 상점들도 변하다 보니까 변하지 않는 건물들을 좌표 삼아 촬영한 것 같았어요. 종각에 있는 크게 자리한 커피빈 건물, 옛날 화신 백화점 자리에 세워진 종로타워는 건물 모양이 신기해서 항상 눈길이 갑니다. 인물이 담긴 전경도 전경이지만 후경에 눈길이 머물더라고요.
극중 인물처럼 실제로 제가 당시에 종로 일대에서 드로잉을 배웠어요. 그러다 우연히 이명하 배우를 만났거든요. 1부에서처럼 이명하 배우가 뒤에서 저를 보고 등을 두드렸어요. 서울극장에 가는 길인데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다고요. 그래서 그 거리를 함께 걸은 적 있어요. 그래서 그곳에서 영화를 찍어야겠다는 생각했어요. 대학생 시절에는 대학가에서 주로 사람들을 만나지만, 졸업하고 난 다음엔 술값과 음식 값이 싼 을지로, 종로 일대에서 영화하는 친구들을 많이 만났어요. 그래서 그 일대가 정이 많이 갔고 저한테 알게 모르게 계속 쌓여 있었던 거죠. 또 저한테 흥미로웠던 건 그곳엔 할아버지 할머니, 젊은이들이 다 머무는 곳이고, 대로변 빌딩은 강남처럼 높지만 바로 뒤에는 되게 후미진 골목과 노포와 세운상가가 있어 서울의 과거, 현재, 미래가 다 섞여 있다는 점이었어요. 서울이 빠르게 바뀐다라는 점에서 캐릭터들이 삶을 살아가는 방식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서울을 잘 담아야 겠다라고 생각했어요.

▲ 단편 <달팽이>(2020). 장편 <미망>(2023)으로 이어진 출발점.
최근 한국영상자료원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기록 영상으로 발견했어요. 1908년부터 1910년 초 사이에 기록된 걸로 추정되는 인천의 제물포 영상인데, 사람들이 오가는 모습이 생동감 넘쳐요. 무성흑백영화임에도요. 비슷하게 김태양 감독님의 영화도 100년이 더 흐른 뒤에 보게 되면 이 기록영화처럼 아카이브적인 맥락을 갖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얕은 심도로 후경을 다 날려버린 채 인물들을 샷-리버스샷으로 반복해 찍는 여느 영화와는 다르게 다가와요. 촬영할 때도 이 작품이 미래 관객에게도 아카이브와 같은 기능을 하겠다고 느끼셨을까요.
서울이라는 공간도 계속 변하니까 추억은 결국 내 머릿속에만 있는 거잖아요. 그걸 남겨야겠다는 마음이 늘 있었어요. 영화란 매체는 기록이잖아요. 그리고 한 순간을 담습니다. 저는 그 순간에 인물이 느끼는 감정뿐 아니라 공감에도 초점이 맞추려고 해요. <미망>의 1부를 보면, 언급한 커피빈 건물은 아직도 있지만, 그 바로 옆에 공사가 벌어지고 있어요. 2부를 보면 공사가 끝나고 빌딩이 세워져있죠. 1부 촬영 당시와 2부 사이에 3년이란 간격이 있는데, 그 사이 빌딩이 세워졌더라고요.
영화는 다른 예술보다 정직하게 물리적 현실을 기록하는 매체입니다. 그런 속성 때문에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는 영화의 미학이란 "바람에 잔물결 치는 나뭇잎"이라고 말한 적 있습니다. 영화감독들은 자연스러운 일상, 어찌 보면 덧없어 보이는 사소한 순간을 몰두해서 찍을 수밖에 없다고요. 김태양 감독님도 비슷하게 이런 결의 영화들을 만들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작은 것들이 쌓여서 사람이 변하는 것이지, 너무 큰 사건으로 변하는 것 같지 않아요. 오히려 작은 것들이 모여 임계점에 도달하면 물방울 하나만 떨어져도 넘치죠. (컵을 들어 설명하며) 갑자기 컵이 깨지는 일은 흔치 않고 내가 좋아하는 컵이 있으면 30년 동안 쓸 수 있다고 봐요. 어쩌면 이것이 깨지는 날도 있겠지만, 그 순간보다 오래 갖고 있는 사람의 마음이 제게 더 크게 다가와요. 저한테는 그게 더 극적이거든요. 쌓인 마음의 크기도 태산 같고요. 이쪽이 제가 할 수 있고 잘하는 방향이라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것 같아요. 한편으론, 극적인 이야기, 사건 중심 영화를 잘하는 분들이 너무 많아서, 내가 영화를 하면서 나만의 시선과 개성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이 뭘까 실험하는 중인 것 같아요.
영자원 가는 걸 정말 좋아해요

영화를 보기 위해 영자원을 자주 찾으신다고요. 직원들이 자주 목격했다고 해요.
바쁘지 않으면 영자원에 가요. 그냥 가요. (웃음) 글을 쓰는 기간에 제일 많이 가서 영화를 찾아 보고요. 보아야 할 작품이 쌓이면, 시나리오를 쓰다가도 불쑥 찾아가서 봐요. 영상도서관에서도 보고, KOFA에서 상영하는 작품도 보고요. 영화를 보고난 다음 다시 글 쓰러 영상도서관에 가죠. <미망> <서울 이야기> 시나리오도 영상도서관에서 썼어요. 이전에 제 아내가 KOFA 앞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근무했고, 저도 20대 중반부터 30대 초반까지 영자원 티켓박스에서 기간제 근로자로 일했어요. 나중에 제가 그곳에서 일을 안하게 됐을 때도 아내가 출근하면 같이 출근해서 저는 도서관에서 글을 쓰거나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아내가 퇴근할 때 같이 퇴근했어요.
한국영상자료원이 제 2의 고향이네요.
그래서 영자원 가는 걸 정말 좋아해요.

▲ <미망> 스틸
<미망>에서 서울극장의 마지막날을 형상화하기 위해서 KOFA를 활용하셨습니다.
서울극장에서 찍는 게 목표였는데, 엔데믹으로 극장 제한이 풀리는 시점에 그 극장이 아예 문을 닫아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요. 아마 서울극장이 문을 닫지 않았다면 거기서 찍었을 거에요. 제가 영자원에서 일을 할 때 박남옥 감독님의 작품과 필름 영사 기사님들에 대한 영상 촬영을 담당했는데 그때 서울극장 영사실을 가보니 관객으로선 느끼지 못했던 세월의 흔적이 강하게 느껴졌어요. 여기서 영화를 찍어야겠다 생각했어요. 만약 서울극장이 실제로 문을 닫지 않았다면 극중 극장도 사라지지 않았겠죠. 하지만 폐관 소식을 듣고 극장이 문을 닫는 설정으로 수정해 찍었어요. 어떻게든 아카이빙해야 한다라는 마음에서요.
서울극장의 마지막 날 명화가 <미망>에 관한 토크를 마치고 극장을 떠나는 장면을 보면 카메라는 객석을 오랫동안 바라봅니다. 스크린의 시선으로 극장을 바라보는 듯해요. 불 꺼지고 사람들이 거의 다 나갈 때까지도 카메라를 움직이지 않으셨어요.
서울극장을 애도하는 장례식 같은 장면이라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두 버전으로 찍었는데, 관객이 자리를 뜨는 도중에 KOFA 영사기사이신 유승현 차장님이 극장 내 불을 꺼버렸어요. NG가 아닌가 했는데, 이 옛날 영사기사들은 퇴근하려고 사람들이 퇴근할 때 불을 빨리 꺼버렸다고 하시는 거에요. 그 말을 듣긴 했지만 한 번 더 테이크를 갔어요. 근데 유승현 차장님이 하신 말씀이 오래 마음에 남았고, 결국 그 장면을 선택했어요.

<미망>이 헤어진 인연, 문닫는 극장, 세상을 떠난 친구 이야기였던 반면, 단편영화 <나만 아는 춤>은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이야기입니다. 무용 초급반 수강생들이 '그들만이 아는 춤'을 만들어가는 이야기에요. 이러한 변화는 어떻게 일어난 걸까요.
<미망>을 만들었던 과정이 <나만 아는 춤>에서 무용단이 모여 안무를 만들어 가는 것과 똑같다고 생각했어요. <미망>의 스탭들은 평소 뮤직비디오도 찍고 다른 일로 생계를 이어갔지만, 영화를 찍고 싶으니까 시나리오가 나오면 모두들 하던 일을 멈추고 영화로 돌아왔어요. 극중 춤을 만들어가는 사람들도 전문적으로 춤을 추는 댄서가 아니잖아요. <미망>도 ‘우린 프로야. 세상에 이렇게 보일거야’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게 아니라, 그냥 영화를 좋아하는 우리끼리 모여서 찍은 작품이에요. 하지만 영화가 만들어지고 난 다음 의미가 파생되었죠. 저는 <미망>이란 하나의 영화로 완성이 된 건 맞지만 미완의 미완의 미완을 모아서 이 작품이 완성되었다고 생각해요.
첫 이야기를 2019년에 찍었는데 완성되지 않았고, 또 다른 이야기를 추가로 촬영을 해서 붙이셨기 때문에, '미완의 미완'이라고 말씀하시는군요.
네, 그래서 그렇게 생각해 보면 결과를 내는 데까지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리고 많은 사람들이 필요해요. 저는 그게 너무 애틋해서 영화 대신 <나만 아는 춤>이란 작품으로 치환했어요.
계획은 늘 여러 방향으로 바뀔 수도 있겠지만 2026년엔 어떤 일을 가장 염두에 두고, 어떤 희망과 계획을 품고 계신가요.
<패밀리 바이 블러드>를 잘 찍는 데 완전 포커스가 맞춰져 있고, 제가 연출하는 건 아니지만 <달의 여행>을 온 마음을 담아 찍으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가능하면 집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며 최대한 일상을 지키고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