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현장의 목소리: 전문가들이 나누는 실전 노트
영화계 분야 탐구 토크 ‘우리가 영화를 만듭니다’
영화 현장의 목소리: 전문가들이 나누는 실전 노트
영화계 분야 탐구 토크 ‘우리가 영화를 만듭니다’
글: 김소미(씨네21)

▲ 교육 '우리가 영화를 만듭니다' 포스터
한 편의 작품이 스크린에 올라 관객과 만나기까지 영화는 얼마나 다양한 이들의 손을 거칠까. 지난 11월 18일부터 12월 9일까지 매주 화요일 저녁,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KOFA 2관에는 그 질문 앞에서 공부하려는 사람들이 모였다. 한국영상자료원이 영화 제작에 관여하는 다양한 직업 세계를 살펴보고 일반 대중은 물론 종사자 및 지망생들을 위한 실질적인 교육의 장을 위해 마련한 영화계 분야 탐구 토크 '우리가 영화를 만듭니다'를 통해서다. <씨네21> 김소미 기자의 진행으로 총 4회에 걸쳐 윤가은 감독(연출), 이동하 프로듀서(제작), 김정연 작가(시나리오), 최태영 음향감독(음향)이 각자의 자리에서 영화를 완성해온 이야기를 풀어냈다.
1회차. 혼자가 아니라는 것
윤가은 감독이 전하는 지속 가능한 예술의 노력

사진: 이강선
지난 11월 18일 저녁,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KOFA 2관에서 윤가은 감독과의 대화가 시작되기 전 객석에는 <세계의 주인>이 남긴 여운이 감돌았다. 영화 감독 지망생들, 영화과 학생들, 그리고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꾸준히 지켜봐온 관객들이 자리를 채웠고 레드씨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으로 출국을 앞둔 윤가은 감독이 창작 여정을 솔직하게 풀어놓기 위해 무대에 올랐다.
윤가은에게 <우리집> 이후 6년은 혼란의 시간이었다. 친족 성폭력 문제를 취재하고 공부할수록 "쓰는 도중에 내내 실시간으로 내가 실패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그는 회고했다. 하지만 바로 이 과정이 그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대장장이가 쇠를 두드리듯 오래 흔들리는 과정 속에서 작지만 아주 단단한 마음이 생겼다. "영화를 만드는 일이 어렵지만 혼자 만드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뻔하지만, 이제야 진심으로 하게 됐다. ‘내가 작으면 공부하면 되는구나. 세상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품고 있으니 나는 그 이야기를 듣는 게 중요한 것이다, 내 속에 뭐가 있다고 착각하지 말자.’ 이런 생각이 들면서 오히려 좀 덜 외로워졌다." <세계의 주인>은 그래서 윤가은에게 형식적 전환점이기도 했다. 단적으로는 이전 작품들보다 더 엄밀한 거리감을 요구하는 이야기였다. “인물의 주관에 침잠하지도, 관조에 머무르지도 않는 어떤 정확한 거리를 찾아가야 했다. 옛날에 좋아했던 영화들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였다. 특히 켄 로치 감독의 영화들에서 흔히 쓰는 망원 쇼트들이 새롭게 다가왔다."

▲ 교육 '우리가 영화를 만듭니다' 1회차 현장스케치
윤가은 감독은 연출자가 자신의 성향과 자질을 섬세히 인식하고 “오롯이 감당할 수 있는 프로덕션을 꾸리는 일”을 최상의 작업에 필요한 주요 과정으로 꼽았다. 체력적 어려움과 관계의 문제 등으로 꿈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을 고백한 영화과 학생에게는 “여성 감독으로서 산업이 요구하는 감독다운 카리스마와 통솔력, 장악력 같은 것이 버겁고 나 자신은 그런 기질이 부족하기 때문에 나 또한 자조하던 시절이 길었다”고 격려했다. 사학 전공 후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진학한 그는 점차 “옳다고 여겨지는 시스템을 포기” 하는 방식으로 영화 만들기의 생존 전략을 찾아나갔다. 요컨대 “경력이 많지 않아도 뜻이 통하고 개방적이며 성실한 동료들과 작업하기, 나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면서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회차와 촬영 시간으로 계획을 짜기” 등이다. 윤가은에 따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나의 한계를 수용할 수 있는 프로덕션을 만드는 일”은 겸허한 태도의 문제만이 아니다. 이는 제도 교육, 그리고 산업의 요구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젊은 창작자들이 작업의 실질적 추진력과 고유성을 확보하는 매우 필수적인 관문이다.
생계 문제를 묻는 질문에는 다르덴 형제와의 추억이 소개됐다. 2023년, 다르덴 형제가 전주국제영화제를 찾았을 때 식사를 함께한 윤가은 감독을 향해 뤽 다르덴이 던진 질문 중 하나는 "당신의 세컨 잡은 무엇입니까?”였다고 전했다. "세컨 잡을 갖고 있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고, 영화하는 동료들에게 그런 질문을 처음 받아서 이상하고 동시에 감사했다. 영화로 돈을 벌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돈을 벌 수 없는 시기가 더 길다. 그럼에도 좋아하는 영화를 만들어야만 하겠다는 의지, 거스를 수 없는 마음의 작용 때문에 이 일을 계속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경우라면 꼭 영화로 생계를 유지해야한다는 명제에서 벗어나 고민해볼 필요도 있다.”
생계 문제를 묻는 질문에는 다르덴 형제와의 추억이 소개됐다. 2023년, 다르덴 형제가 전주국제영화제를 찾았을 때 식사를 함께한 윤가은 감독을 향해 뤽 다르덴이 던진 질문 중 하나는 "당신의 세컨 잡은 무엇입니까?”였다고 전했다. "세컨 잡을 갖고 있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고, 영화하는 동료들에게 그런 질문을 처음 받아서 이상하고 동시에 감사했다. 영화로 돈을 벌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돈을 벌 수 없는 시기가 더 길다. 그럼에도 좋아하는 영화를 만들어야만 하겠다는 의지, 거스를 수 없는 마음의 작용 때문에 이 일을 계속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경우라면 꼭 영화로 생계를 유지해야한다는 명제에서 벗어나 고민해볼 필요도 있다.”

▲ (왼쪽부터) <자전거 탄 소년>, <아무도 모른다>, <거울> 포스터
말미에 윤가은은 마음이 흔들릴 때 꺼내어 보는 영화 세 편을 소개했다. 다르덴 형제의 <자전거 탄 소년>,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거울>이었다. 파나히의 <거울>에 대해 그는 "기운이 달리고 영화가 버거워질 때마다 다시 본다. 기적 같은 영화"라고 애정을 드러냈다. 방황하던 시절에 자신 또한 여러 창작자들의 특강을 좇아다녔다는 윤가은 감독은 미래의 동료들에게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며 2시간의 열띤 대화를 마쳤다. “누군가의 새롭고 고유한 세계를 만나고 싶은 한 명의 영화 팬으로서 여기 영화를 만드실 계획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부디 누구의 눈치도 보지 말고 용감하게 만들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
2회차. 끝까지 가는 사람들이 영화를 만든다
이동하 프로듀서가 전하는 기획의 끈기

사진: 오계옥(씨네21)
"우리 어떻게 해야 되지?" 한국영상자료원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이동하 프로듀서는 기획팀 직원과 반쯤 농담처럼 이런 대화를 나눴다고 했다. 영화사 레드피터의 대표이자 <부산행> <반도> <미성년> 등을 제작한 그도, 한국 영화 산업의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는 솔직한 고민을 털어놓는다. 동시에 지난 11월 25일 '우리가 영화를 만듭니다' 2회차 무대에서 역설하기를 불확실성을 견디며 한 편의 영화를 완성해내는 비기는 다른 무엇도 아닌 '버티는 힘'이라고 역설했다.
19살. 빔 벤더스의 <파리, 텍사스>를 보고 영화 언어의 존재를 처음 깨달았던 청년은 프랑스로 건너가 철학을 공부했다. 한국에 돌아와 우니 르콩트 감독의 <여행자>로 프로듀서를 시작했고 이창동 감독의 <시>를 거치며 제작자의 길을 걸었다. "프로듀서가 된 이후에도 제작사를 운영한다거나 대표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결코 없었다"는 그를 어느덧 영화사 대표로 만든 건 애니메이션을 만들던 시절의 연상호 감독과의 인연이다. 때는 2014년 무렵, 상수동 이웃이 된 두 사람은 매주 영화 기획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어느 구정 연휴 전날 아침에 연상호 감독이 전화로 아이디어 하나를 던졌다. "아버지와 아들이 KTX를 타고 부산에 가는데, 감염된 학생 한 명이 타면 어떨 것 같아?" 연휴가 끝나자마자 세 사람(감독, 작가, 프로듀서)이 매일 오후를 함께 보냈다. "서로 인신공격 수준으로 싸우다가도 헤어질 때는 '이거 영화로 만들어질 것 같아'라고 했다." 두 달 반 만에 초고가 나왔고 <부산행>은 그렇게 탄생했다. 이동하 프로듀서는 웃으며 일화를 전했지만 무용담 이면에 짚어볼 만한 중요한 진실이 담겨 있다. 창조는 천재성의 섬광이 아니라 끊임없는 대화와 수정, 그리고 끝까지 놓지 않는 집요함에서 온다는 것. "아직 불완전한 기획일지라도 열린 마음으로 공개하고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어디까지 갈지 모르는 이야기의 시작일 수 있다."

▲ 교육 '우리가 영화를 만듭니다' 2회차 현장스케치
시나리오 개발에 대한 그의 접근은 현실적이면서도 이상적이다. "완성도가 딱 높은 시나리오를 구경하는 건 하늘의 별따기"라면서도, 그는 하나의 미덕이 보이면 수년간 붙잡고 늘어지는 자세가 결국 작품을 만든다고 강조했다. 일례로 <미성년>은 한 연극 작품을 김윤석 배우가 발견한 후 3년간 작가와 주고받으며 대사 하나하나를 수정한 끝에 완성됐다. 이종원 감독의 <생일>은 세월호 유가족과의 봉사활동에서 시작된 이야기를 4년 넘게 품은 끝에 탄생했다. "10개 기획하면 1-2개가 메이드 될까 말까 한다. 그 작업 과정이 지난하고 힘들어서 대부분 거기서 좌초된다. 그 과정을 잘 넘어가는 게 중요하다. 물론 자신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냉정히 자문하는 과정에서 때로 작품을 접는 게 나은 선택일 때도 있다. 하지만 프로듀서의 입장에서 보자면, 어느 작가나 끝까지 밀어붙여보는 경험을 한 번은 해봐야 한다."
이동하 프로듀서의 현재 박차를 가하고 있는 작품은 <도희야> <다음 소희>를 만든 정주리 감독의 <도라>다. 프랑스 아르테 시네마의 지원을 받아 프랑스·한국·룩셈부르크 3국의 제작사가 공동 제작하는 작품이다. 합작 조항이 각 나라에서 최소 20%의 재정과 예술적 기여도를 요구하기에 프로덕션의 난도도 높다. "프랑스 촬영감독을 섭외하고 룩셈부르크에서 카메라 장비를 보내기로 했다. 펀딩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주연 배우인 안도 사쿠라의 스케줄도 맞춰야 했다." 이동하 프로듀서는 "어느새 내가 대출을 알아보고 불구덩이 속에 있더라"고 웃으며 털어놨다. 이후 메인 투자가 확정되면서 시름을 덜었지만 개봉까지 프로듀서의 어깨는 무겁다.
지원예산은 2025년 대비 100억 원 증가한 200억 원 ▲지원대상은 2025년 순제작비 ‘20억 원 이상 80억 원 미만’에서 ‘20억 원 이상 100억 원 미만’으로 확대 ▲편당 지원금액 또한 2025년 ‘순제작비의 30% 혹은 15억 원 중 더 낮은 금액 범위 내’였던 반면, 2026년 ‘순제작비의 40% 혹은 25억 원 중 더 낮은 금액 범위 내’에서 심사결과를 통해 차등지급 방식으로 결정한다. ▲또한, 신인감독과 국제공동제작을 위한 쿼터도 신설 됐다. 한국영화의 미래를 선도할 신인감독 발굴•육성을 위해 최종 지원편수의 30% 이상 범위에서 신인감독 쿼터를, 침체된 내수시장 활로 모색을 위해 최종 지원편수의 20% 범위 이내에서 국제공동제작영화 쿼터를 배정했다.
출처: 영화진흥위원회, 「2026년 중예산 한국영화 제작지원 사업설명회」 보도자료 (2025.12.2) 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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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순항하는 순간에도 "항상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며 한 편 한 편을 끝까지 완성해온 프로듀서는 지금 기대작인 <도라> 뿐 아니라 한국영화를 향해 이동하 프로듀서는 가능성을 믿는다. "내년 영화 예산이 증액되는데 국제공동제작 지원금도 포함된다. 아트하우스 영화, 독립 영화, 다큐멘터리에 분명 조금은 더 길이 열릴 것이다." 그가 주목하는 장르는 SF다. "작은 예산이라도 아이디어와 상상력으로 한국만의 SF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3회차. 발견과 발굴, 그리고 버티기의 기술
김정연 작가가 전하는 각본가의 자세
사진: 백종헌(씨네21)
“선생님의 어릴 적 꿈은 무엇이었습니까?” 뜬금없는 방송국 프로듀서의 질문에 그물을 내리던 묵호항의 어부가 툴툴거린다. “왜 아픈 상처에 소금을 뿌리십니까?” 오래 전 문학도를 꿈꿨다는 남자의 입에선 기다렸다는 듯 시가 줄줄 흘러 나온다. '우리가 영화를 만듭니다' 3회차, 김정연 작가는 KBS <다큐멘터리 3일>의 한 에피소드를 청중과 함께 보며 작가가 현실에서 캐릭터를 ‘발굴’하는 시점과 그 과정을 생생히 묘사했다. 어부의 범상치 않은 화술을 간파한 PD의 단도직입적인 질문에서, 누군가 자신의 결핍을 발견해주길 바라온 어부의 손짓과 말투에서 작가는 제각기 캐릭터를 읽었다. 그저 감동적으로 회자되었던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이 영화 시나리오 속 인물의 감정으로 재해석하는 강연자의 열렬함에 객석에선 곧 박수가 터져나왔다. 작가에게 특별한 교재만큼 더 중요한 것은 세상의 많은 평범한 풍경 속에서 “무엇을 볼 것인지” 연습하는 일이라고 김정연 작가는 덧붙였다.


* 출처: KBS 다큐멘터리 3일 415회 (2015년 8월 23일 방영), PD 질문에 대한 출연 선장의 답변
<비공식작전> <밀수> <더 문>(각색)을 연달아 내놓으며 2023년 가장 주목받은 시나리오 작가 중 한 명이 된 김정연 작가. 하지만 이날 강연의 백미는 작가 자신의 실패담에서 나왔다. <비공식작전> 작업 당시, 그는 3년간 레바논을 연구하며 시나리오를 썼다. 그런데 메이킹 필름에서 야자수를 보는 순간 깨달았다. "레바논에 야자수가 있다는 걸 완성된 영화를 보고서야 알게 됐다. 주인공의 초목표, 메인 플롯에만 매몰돼 나 스스로 그 나라의 자연환경, 사람들의 일상을 놓친 것이다." 이후 김정연 작가는 시나리오를 쓸 때 종종 "야자수를 생각하자"고 되새긴다.
그가 전하는 글쓰기의 행로는 꽤 고전적이고 그는 클래식을 여전히 실천 중이다. 심산 작가(<비트> <태양은 없다>)의 강의를 통해 시나리오 워크샵에 참여하며 집필을 시작한 그는 10여년 이상 숱한 공모전 낙방을 경험했다. 그 사이 그룹 스터디에서 냉정한 평가를 마주하고 영화 필사를 하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김 작가는 특히 "100분짜리 영화를 틀어놓고 최대한 실시간으로 베껴 쓰라. 이때 외국어 영화보다는 한국어 영화를, 자막이 아닌 실제 대사의 리듬을 익히라"고 조언했다. "플롯 포인트가 언제 나오고 인물의 어떤 대사에서 사건이 전환되는지 몸으로 흡수하게 된다." 김정연 작가가 가장 열심히 노트에 옮겨 적은 영화는 이정향 감독의 <미술관 옆 동물원>, 가장 신뢰하는 작법서는 로버트 맥기의 영원한 고전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이다.
그가 전하는 글쓰기의 행로는 꽤 고전적이고 그는 클래식을 여전히 실천 중이다. 심산 작가(<비트> <태양은 없다>)의 강의를 통해 시나리오 워크샵에 참여하며 집필을 시작한 그는 10여년 이상 숱한 공모전 낙방을 경험했다. 그 사이 그룹 스터디에서 냉정한 평가를 마주하고 영화 필사를 하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김 작가는 특히 "100분짜리 영화를 틀어놓고 최대한 실시간으로 베껴 쓰라. 이때 외국어 영화보다는 한국어 영화를, 자막이 아닌 실제 대사의 리듬을 익히라"고 조언했다. "플롯 포인트가 언제 나오고 인물의 어떤 대사에서 사건이 전환되는지 몸으로 흡수하게 된다." 김정연 작가가 가장 열심히 노트에 옮겨 적은 영화는 이정향 감독의 <미술관 옆 동물원>, 가장 신뢰하는 작법서는 로버트 맥기의 영원한 고전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이다.

▲ KMDb '영화글' 연재글 「그때의 내가 만났던」
집필 초반에 찾아오는 슬럼프를 묻는 객석 질문에 김정연 작가는 치밀하고 논리적인 구조적 글쓰기를 제안했다. 그는 3장 구조 내 8시퀀스를 정확히 별도의 파일로 분류해 최종적으로 80개의 신 리스트를 완성하는 과정부터 우선 거치면서 뼈대를 탄탄히 쌓는다. “100장 짜리 시나리오를 쓰려면 최소 300장 분량의 자료·메모·변형 초고가 있어야 한다. 바탕자료가 많을수록 시나리오의 밀도가 높아진다.”
작가의 자리는 불안정하다. 입봉 후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는 성실하고도 단호하게 답했다. "어쩔 수가 없다. 작품이 작가의 유일한 자산이므로 어려울수록 매일 쓰고자 한다." 영화사 회의에서도 "대중 영화 작가로서의 작업 프로세스는 따르면서도, 필요하다면 때로 지켜야 할 지점 앞에서는 끝내 버텨내는" 태도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시나리오는 완성된 집의 뼈대다. 벽돌 색깔이나 창문 모양은 바뀔 수 있어도, 뼈대가 흔들리면 모두가 고통받는다. 그런 믿음을 갖고 작가가 버티는 순간도 필요하다." 45세에 입봉한 그가 위안 삼았던 존재는 40대에 등단해 천 편이 넘는 작품을 남긴 일본 추리문학의 거장 마쓰모토 세이초였다. 앞선 세대의 동료에게 그는 배웠다. “작가는 쓰고 또 쓰고, 그것이 최선입니다”
4회차. 기억의 아카이브를 짓는 일
최태영 음향감독이 전하는 영화 사운드의 비밀

사진: 오계옥(씨네21)
21세기가 동틀 무렵부터 한국 영화의 소리를 만져온 최태영 음향감독은 이제 할리우드에 뒤지지 않는 한국 영화 사운드의 '표준'을 이야기한다. 한국영상자료원 '우리가 영화를 만듭니다' 마지막 회차에선 최태영 음향감독이 1997년 라이브톤 창립 이후 30년 가까이 축적한 이력을 바탕으로 영화 음향 작업의 프로세스와 분야별 직무를 세분화해 들려주었다.
그는 처음 시나리오를 받아 음향을 기준으로 예산을 짜는 순간부터 현장 녹음, 스튜디오에서 펼쳐지는 복잡다단한 후반작업 공정, 극장에서의 기술 시사에 이르기까지 그와 라이브톤 팀이 이루는 협업을 한 편의 모노드라마처럼 풍성하게 구연했다. 사운드 슈퍼바이저, 사운드 디자이너, 리 레코딩 믹서로서 자신의 세 가지 주요 역할을 소개하고 다이얼로그 에디터, ADR 레코딩 엔지니어, 폴리 아티스트 등 최소 10명 이상의 스태프가 움직이는 음향 스튜디오를 정교한 오케스트라에 비유했다. 그 중심에서 음향감독은 감독의 주관적 의도를 관객이 객관적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소리로 바꾸어내는 통역사다.
그가 강조한 설득력 있는 사운드의 핵심은 '기억'이었다. "사운드 디자인의 시작은 기억이다. 우리의 기억을 절대 배제하고 어떠한 소리를 만들 수가 없다. 눈에 보이는 공간이 목욕탕인데 작은 방 정도 크기의 리버브(울림)를 주면 관객은 즉시 이상함을 감지한다. 우리 뇌에 저장된 공간의 소리 레퍼런스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감독의 해석에 따라 리얼리티를 위배할 수도 있다. <하얼빈>의 마지막 장면에서 현빈 배우의 호흡을 관객은 바로 귀 옆에서 들리는 것처럼 디자인했다." <최종병기 활>의 곡사가 내는 독특한 바람 소리를 위해선 고무패드에 낚싯줄과 미니 하모니카를 달아 직접 돌리는 묘수를 내기도 했다. 이처럼 기억에 토대한 소리가 가장 자연스럽게 느껴지는가하면, 때로 영화적으로 가장 진실한 소리는 때비현실적인 거리와 크기를 동반한다.
그가 채집하는 소리는 삶의 순간들이다. 지하 주차장에서 우연히 들은 기이한 신발의 삐걱거림은 <달콤한 인생>에서 킬러의 발소리가 되어 긴장감을 선사했고, 자전거를 탈 때 머리 위를 지나간 노량대교 KTX의 육중한 메탈음은 <설국열차>에서 예카테리나 브릿지를 건너는 기차소리의 무게감으로 되살아났다. "어떤 소리가 나의 감성을 자극하는 순간이 있다. 반드시 그 순간에 녹음하거나 기억해 뒀다가 나중에 영화에서 적합한 순간을 찾으면 사용한다."
한국 관객이 기억하는 수많은 크리처의 목소리 뒤에는 최태영이 있다. <괴물>을 시작으로 <옥자>, <부산행>, <미키17>에 이르기까지, 그가 만든 생명체들은 각자의 성격과 감정을 지닌 캐릭터로 살아 숨 쉰다. <괴물> 당시 최태영 음향감독은 자신의 목소리로 가이드를 만들고 그 음정과 늘림에 맞춰 바다사자의 소리를 에디팅했다. 봉준호 감독이 마지막에 던진 미션은 더 어려웠다. "불타 죽는 괴물이 절망의 포효를 해야한다기에 배우 오달수를 섭외해 감정이 실린 포효를 녹음했다.” <옥자>는 또 다른 도전이었다. 배우 이정은과 돼지 연기를 연습하고 배우의 목소리 위에 뉴질랜드 쿠니쿤 토종 돼지 소리를 섞었다. <미키17>은 배우가 현장에서 크리퍼 소리를 듣고 따라한다는 극중 통역 설정으로 인해 소리부터 먼저 만들어야 했다.
30여년의 꾸준함이 낳은 성취로 최태영 감독은 <기생충>이 칸영화제,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수상과 더불어 MPSE(모션픽처 사운드 에디터 길드) 골든릴 어워드를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과거의 최태영은 어떻게 한국영화도 할리우드 사운드처럼 만들까 고민했다. 그런데 <기생충> 이후엔 우리가 하는 것이 곧 표준으로 인정받게 됐다. 더이상 저들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레퍼런스를 만들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