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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연기 인생, 한국 대중문화의 궤적과 함께하다

배우 이순재가 남긴 유산

70년 연기 인생, 한국 대중문화의 궤적과 함께하다
배우 이순재가 남긴 유산

글: 배수경(영화연구자)

2025년 11월, 배우 이순재 선생이 우리 곁을 떠났다. '현역 최고령 배우'라는 수식어보다 '영원한 현역'이라는 말이 더 어울렸던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무대와 카메라 앞에 설 준비를 하며 예술가의 소명을 다하고자 했다. 1956년부터 연극과 방송, 영화를 오가며 70년의 연기 인생에서 그가 남긴 작품들은 이제 개인의 기록을 넘어, 한국 대중문화가 빈곤의 시대를 지나 오늘날의 위상에 오르기까지의 궤적과 일치한다. 한국영상자료원이 채록한 『2018 한국영화사 구술채록 연구 시리즈 <생애사>: 이순재』 1~2권 속 그의 목소리와 한국고전영화 채널에 공개된 초기 대표작들을 통해, 그가 남긴 유산의 뿌리를 되짚어본다.

 
<초연> 스틸
▲ <초연> 남정임(좌), 이순재(우) 
 
딴따라의 시대, 예술가를 꿈꾸다
 

연기를 삶과 문학의 문제로 받아들인 한 배우의 선택


이순재는 1934년 생으로 서울대 철학과 3학년 시절인 1956년, 극단 떼아뜨르 리브르의 연극 <지평선 너머>(유진 오닐 작)에 출연하며 연기를 시작했다. 연극 활동과 함께 그는 방송 매체로 활동 영역을 넓혀 1957년 HLKZ 드라마를 시작으로 1962년 KBS 개국 드라마에 출연했고, 1964년 부터는 TBC 전속배우로 텔레비전 드라마에 꾸준히 출연했다. 영화와의 인연은 1963년 박종호 감독의 <그 땅의 연인들>과 1965년 이강천 감독의 <죽은자와 산자>에 단역으로 출연하며 시작된다.

어서 1966년 정진우 감독의 <초연>에서 첫 주연을 맡아 당시 영화계 대표 스타였던 신성일, 남정임과 함께 호연을 펼치며 영화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곧 당대 인기배우들이 그러했듯 겹치기 촬영으로 다수의 작품에 동시에 출연했는데, 1967년 26편, 1968년 30편, 1969년 28편의 영화속에 모습을 남겼다. 대학 시절 영화광이었던 그는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영화와 프랑스의 시적리얼리즘 영화, 로렌스 올리비에가 연출하고 연기한 영국의 세익스피어 영화는 물론 미국의 스튜디오 황금기 상업영화들까지 섭렵했다.

이 경험으로 그는 연기는 문학과 인생의 본질을 투영하는 철학적 행위이고 배우 또한 예술가라는 인식을 갖게 된다. 많은 이들에게 영화 속 젊은 시절 이순재의 모습을 기억할 때, 하얀 와이셔츠 차림의 냉철한 지식인의 모습을 떠올릴텐데, 배우가 딴따라라고 멸시받던 시절, 연기는 지적인 행위이자 예술이라는 사실을 먼저 깨달은 그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모습이다. 물론 많은 출연 편수 만큼이나 그는 폭넓은 배역들을 맡아왔는데 한국고전영화 채널에서 확인할 수 있는 세 편의 작품은 그러한 스펙트럼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세 작품은 모두 문학작품을 원작으로 한 문예영화로, 문예영화의 전성기인 1960년대 중후반에 제작되었다. 외화수입쿼터를 위한 제작사의 요구와, 문학 서사 위에 영화의 미학을 더해 예술성을 발휘하고자 했던 감독의 욕망이 맞물리며 한국영화의 예술적 실험이 문예영화 장르안에서 전개되던 시기였다.


 
<메밀꽃 필 무렵> 스틸
▲ <메밀꽃 필 무렵>(1967) 동이 역, 이순재
 
1960년대 문예영화 속 청년 이순재의 얼굴
 

절제된 연기로 완성된 젊은 동이 <메밀꽃 필 무렵>


이효석의 원작을 이성구 감독이 영상화한 <메밀꽃 필 무렵>(1967)에서 이순재는 '동이' 역을 맡았다. 박노식, 허장강, 김희갑 등 기라성 같은 선배들 사이에서도 그는 안정감 있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영화 전반 장터와 주막에서 허생원 역의 박노식과 갈등을 벌이고, 후반 다음 장으로 이동하는 길 위에서 허생원과 가까워지는 동이 이순재의 연기는 결코 과하지 않고 조화롭다. 그는 격정적인 감정을 표출하는 주인공 허생원 박노식 옆에서 혈육의 이끌림을 느끼는 청년의 미묘한 심리를 절제된 표정으로 소화해내며 젊고 순수한 청년 동이가 된다. 당시 그는 5편의 작품에 겹치기 출연중이었다. 이 작품의 크랭크인 당일 강원도 봉평에서 촬영을 마치고 서울 만리동 세트장으로 이동해 다른 작품을 촬영한 뒤 새벽에 강원도로 이동하던 중 자동차 사고를 당해 얼굴에 흉터가 생기고 만다. 몇 년 후 수술로 흉터를 없애기 전까지, 이 작품은 물론 이 시기 영화들에서 그의 얼굴 오른쪽 광대 옆에 있는 상처를 볼 수 있다. 그는 얼굴의 상처 때문에 역할을 맡지 못하면 감독이나 작가로 전향해야겠다는 생각까지 했지만 선배, 동료 배우들은 상처가 아물때까지 그를 기다려주었고 영화사들의 출연요구는 이어졌다.


 
<나무들 비탈에 서다> 스틸
▲ <나무들 비탈에 서다>(1968) 현태 역, 이순재
 
관성 없는 연기로 새겨진 전후 청년의 시간
 

전후 세대의 불안과 냉소 <나무들 비탈에 서다>


황순원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최하원 감독의 데뷔작 <나무들 비탈에 서다>(1968)에서 그는 한국 전쟁의 상처로 정신적 고통을 겪는 지식인 청년 '현태'를 연기했다. 2차 대전 후 전쟁의 트라우마를 다룬 유럽영화들을 섭렵한 바 있는 그는 이 영화에서 전후, 자기혐오와 불안, 위악과 냉소 속에서 방황하는 청년의 모습을 특유의 차가운 표정과 태도로 잘 재현해냈다. 기성감독을 압도할만한 데뷔작이라 호평받은 이 작품에서 신인 감독 최하원은 에이젠슈타인의 몽따쥬 이론을 주인공 현태의 정신적 방황과 원인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했다. 영화의 23분 35초부터 시작되는 이 몽타주는 번잡한 종로 한복판에 선 현태를 과거 한국전쟁 당시의 결정적 사건 현장으로 데려간다. 종로 사거리 횡단보도를 건너는 현태의 주변으로 전차와 버스, 자동차들이 정신없이 내달린다. 자동차들은 이내 전장의 탱크로 이중인화되고 혼란스러운 표정의 현태 위로 소음을 내며 매달린 신호등이 곧 전쟁기 어느 민가에 소음을 내며 부서져 있는 시계로 교차된다. 그 옆에는 현태가 오인 사살한 민간인이 죽어있다. 현재 현태의 불안과 자기혐오의 원인이 되는 사건 중 하나가 등장한 것이다. 전쟁 중 어쩔 수 없는 사건을 대면한 이 장면에서 현태의 창백한 표정과 시린 눈빛이 무척 인상적이다.

이 작품이 잘 만든 문예영화이자 모더니즘 영화로 평가받는 이유는 신인 최하원 감독의 과감한 예술적 시도에 젊은 배우 이순재의 관성에 젖지 않는 연기가 더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다면 복개한 청계천 아스팔트 위에서, 영하의 날씨에 살수차로 비를 뿌리며 격투장면을 촬영할 때이다. 전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전우인 석기와 패싸움에 연류되는 장면을 찍기 위해, 한 겨울 밤 야외에서 대기 중 추위를 피하려 잠시 불을 쬐고 난 뒤 몸에 비를 뿌리며 촬영하다보니 엉덩이에서 김이 나는 모습이 찍히고 만 것이다. 재촬영이 불가능해 어쩔 수 없이 사용한 장면이 이 영화의 1시간 11분 40초에 등장한다. 단 한 테이크의 기회밖에 없어 그는 몸을 사리지 않고 연기했지만 빈곤한 영화 현장의 흔적은 필름에 고스란히 남았다. 1960년대 한국영화 속 실내에서 입김이 나오는 장면들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안타깝지만 웃고 넘길만한 일화이다.


 
<시발점> 스틸
▲ <시발점>(1968) 상훈 역, 이순재
 
행동 대신 사유 속에 머무는 전후 세대의 얼굴
 

전후, 관념적 고통에 머무는 얼굴 <시발점>


<시발점>(1968)은 김수용 감독이 이청준의 소설 『병신과 머저리』를 영화화한 수작이다. 이순재는 <시발점>에서 신성일이 연기한 의사인 형 ‘영훈’과 대비되는 화가인 동생 ‘상훈’ 역할을 맡아, 전쟁의 직접적인 상처는 없으나 정체 모를 무력감에 시달리는 전후 세대의 내면을 탁월하게 묘사했다. <나무들 비탈에 서다>와 같이 전후 세대의 방황을 표현하는 역할이지만 <시발점>의 상훈은 위악적이고 파괴적인 행동이 아닌 관념적인 고통으로 괴로워 한다. 상훈은 연인과의 관계도 작품활동도 요원하다. 어떤 책임질 일도 하지 않는 그래서 용기없고 소극적인 상훈을 이순재는 담담하게 연기한다. 자전적 소설을 통해 전쟁의 상처를 대면하고 능동적으로 극복하려는 형 영훈은 이런 상훈을 경멸한다. 상훈은 형의 소설에서 자신과 같이 관념적이고 비루한 형 영훈의 모습을 발견하고 형에 대한 혐오의 감정을 폭발하는 데, 그 대상은 형 영훈이 아닌 말없이 앉아 있는 형수를 향한다. 이순재는 난해하고 복잡한 인물의 심리 상태를 차분하게 강약을 조절하며 표현해낸다.
 

 
이순재 배우
 ▲ [한국영화사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생애사: 배우 - 이순재 구술 현장
 
연기를 대하는 태도
 

배우라는 직업을 수행한 한 생애, 이순재


이순재의 연기에서 주목할 것은 기술이나 기교가 아닌 태도이다. 겹치기 촬영이 일상이던 시절, 현장에서 프롬프트를 받아 대사를 하고 성우가 후시녹음을 맡아 했던 관행 속에서도 그는 시나리오의 대사를 모두 외워 촬영장에 나갔다. 그리고 발성과 발음은 연기의 기본이었기에 후시녹음 더빙 또한 항상 본인이 직접했다. 이런 행동은 연기를 기술이나 요령이기 전에 직업적 수행으로 인식했던 그의 성실한 태도에서 기인한다. 그래서 이순재의 연기는 화려하거나 장면을 압도하기 보다는 장면 안에 정확하게 놓이는 것에 가까웠다. 연기가 삶과 문학을, 때로는 철학을 재현해내는 예술이 되기 위한 전제가 그가 보여준 성실한 태도일 것이다. 이제 카메라 앞에 선 그의 모습을 볼 수는 없으나 그가 남긴 연기와 목소리, 기록은 여전히 살아 있다. 그리고 앞으로 오래도록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 질문을 던질 때 그의 생애와 기록은 다시금 소환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