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가 사각지대에 놓이지 않기를
독립영화 아카이브 담당자 송태호 인터뷰
독립영화가 사각지대에 놓이지 않기를
독립영화 아카이브 담당자 송태호 인터뷰
글: 배동미(씨네21)
사진: 백종헌(씨네21)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출장을 가장 많이 다니는 사람 중 한 명이라면, 이 사람이 아닐까. 수집팀 송태호 독립영화 아카이브 담당자는 전국 각지에서 열리는 영화제에 참석하여 독립단편영화들을 보기 위해 한달에 한번 꼴로 서울을 떠난다. “5월이면 전주국제영화제에 갔다가 인천에서 열리는 디아스포라영화제에 가죠. 좀 시간이 지나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열려요. 올해는 부산국제영화제가 당겨지면서 부천에서 돌아와 한달 뒤 바로 부산에 갔네요. 이 영화제들과 더불어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대구단편편영화제, 전북독립영화제 등에 가고요.”
출장은 홀로 떠난다. 조용히 혼자 밥을 먹고, 상영 시간에 맞춰 극장을 찾는다. 그리고 세상에 처음 나온 독립영화들을 두 눈에 가득 담는다. 그렇게 본 영화 중 보존해야 한다고 여겨지는 작품을 가슴에 담아 극장을 빠져나온다. 그럴 땐 이런 마음이다. “저 영화의 감독님은 어떻게 저런 공간을 떠올렸을까. 어떻게 저런 대사를 할 수 있었을까. 어떻게 저런 사람이 존재할 수 있을까.” 영화를 보면서 저는 ‘왜’보다는 ‘어떻게’를 더 생각하려고 했어요. 그래야 감탄에서 멈추지 않고, 더 끈질기게 곱씹게 되고, 기억도 훨씬 유연하게 남더라고요. 그래서 더 대단하다고 느꼈어요.” 영화제에서 송태호씨는 장편과 단편 가리지 않고 본다. 다만, 장편 영화는 개봉까지 이어지면서 ‘의무제출’ 시스템에 의해 수집되는 경우가 많아, 아무래도 단편에 더욱 눈길이 간다. 사각지대에 머무는 훌륭한 단편영화가 없도록. 그 결과, 그가 올해 수집한 단편과 장편 비율은 9:1 정도였다. “올해 94편의 독립영화를 수집했는데, 그중 단편이 87편이에요.”

물론 송태호씨 혼자만의 결정은 아니다. 최종 수집은 선정위원들이 결정한다. 송치화 KBS <독립영화관> 작가, 허남웅 영화평론가, 차한비 < REVERSE > 기자, 오렌지필름 등 전문가들이 올해 수집을 결정하는 역할을 했다. 송태호씨는 그들의 결정이 이뤄지기 전까지 수집할 독립영화의 목록을 넓히는 역할로 자신을 소개한다. “저는 최대한 수집 가능한 작품의 목록을 넓게 만들기 위해서 다양한 영화를 보려고 해요.”
그 목록을 넓히기 위해선 그의 손과 발이 바빠진다. 선정위원들에게 긴 영화 리스트를 건네기 전 영화를 만든 감독이나 저작권자에게 우선 연락해 독립영화 아카이브의 취지를 설명하고 허락을 맡는 과정을 거쳐야 해서다. “감독님들이 수집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먼저 검토하는 건 아닌 것 같아 한분한분 연락처를 최대한 수소문해서 찾아요. 연락이 닿으면 ‘감독님의 작품을 수집하고 싶습니다’라고 말씀드려요. 그러면 거부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무조건 동의합니다’라고 하시는 분들이 많으세요. 그렇게 다시 수집 가능한 작품의 목록을 최종 정리해서 선정위원 분들을 드리면 선정위원들이 면밀히 보시고 우선순위 정해가지고 최종 회의를 열죠.”
문득 그 최종 회의가 열리는 현장이 궁금해져 어떠한지 슬쩍 물었다. 그는 “엄청 치열하죠”라고 답한다. 상반기와 하반기 두차례에 걸쳐 회의가 열렸는데, 심사위원들이 만장일치한 작품은 당연히 수집하기로 결정나지만, 의견이 갈리는 작품들은 토론의 불을 댕긴다고 했다. “심사위원들 각자가 이 영화를 왜 더 시급하게 수집해야 하는가 확고하게 이야기하세요.”
이처럼 고심하는 과정을 거쳐 상반기에는 41편, 하반기에는 53편이 독립영화 아카이브의 날개 아래 들어오게 되었다. 송태호씨는 특히 올해 하반기에 2000년대 초반부터 2010년대까지 독립단편영화들을 대거 수집한 경험을 인상 깊게 이야기했다. 막 탄생한 작품이 아니라 구작 수집에 임하는 송태호씨의 마음도 진지했다고 한다. 오래 전 영화들을 모두 직접 관람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거쳤다.”본편을 확인할 수 없는 작품은 일단 수집에서 보류했어요. 예산과 수집 편수는 한정적이고 많은 대상작 중에서 선별 수집을 진행하는데, 담당자와 선정위원들이 작품을 직접보는 것이 업무에 대한, 작품을 선정하는 것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거든요.”

고민이 될 때 그는 ‘독립·예술영화 수집 편수 확대를 통한 의무제출 사각지대 해소’라는 독립영화 아카이브의 목적을 떠올렸다. 임정환 감독의 <라오스>(2015), 정주리 감독의 <영향 아래 있는 남자>(2007)와 같은 시간을 견딘 작품들이 그렇게 수집되었다. 감독에게 연락하여 수집 소식을 알리고 계약서를 쓰고 영화의 디지털 파일을 인수하여 한국영상자료원 파주보존센터에 옮기는 것까지가 그의 역할이다.
송태호씨는 독립영화 아카이브를 맡기 전 ‘찾아가는 영화관’(찾가영) 담당자로서 여러 지역을 찾아가 영화를 상영했다. 지역이나 계층에 따른 문화 격차를 낮추는 일이었다. “아직도 너무 선명한 기억이 있어요. 제천영상미디어센터에서 농인을 위한 영상 해설, 음성 해설이나 자막을 띄운 버전의 <파묘>를 상영했어요. 영화가 시작되고 조금 지나자 두 분의 관객이 극장을 빠져나오시는 거예요. ‘영화가 너무 무서워서 못 보겠다’고 하시면서요. 영화가 다 끝난 뒤 다른 많은 관객도 영화가 너무 무서웠다, 재밌었다고 하셨고요.”
그때의 경험은 그에게 ‘몰입’이란 화두를 남겼다. ‘찾가영’에서 만난 몰입해서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귀하게 여겨졌다. “저는 원래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하지만 ‘찾가영’에서 다양하게 영화를 느끼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영화를 보는 행위는 엄청난 것이란 걸 알았어요. 영화는 역시 보는 게 중요하구나. 영화를 만드는 사람, 보는 사람, 영화를 쓰는 사람 등 영화를 다루는 모든 사람들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 몰입이라고 생각합니다.”

생글생글 웃을 땐 소년 같은 얼굴의 그이지만, 몰입에 관해 이야기할 때 송태호씨는 대단히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1999년생인 그는 영화감독을 꿈꾸며 대학 영화과에 진학했지만 학교를 그만두었고 자칭 “우울한 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한때는 냉소적인 마음으로 영화 촬영 현장에서 스태프로 일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영화를 향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던 건 독립영화 아카이브와 ‘찾가영’ 일이었다. “내가 독립영화 아카이브처럼 중요한 일을 할 수 있을까 부담스러웠지만, 한편으론 제 마음 아주 아주 깊은 곳에서는 이 업무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던 거 같아요. 얼마 전 사업을 마무리하고 힘을 내기 위해 찾아다녔던 영화들을 한 자리에 모아보니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습니다.”
그는 이어 말했다. “여전히 제가 뭘 그렇게 좋아하고 쫓아다녔지 모르겠어요. 진짜 영화를 좋아하긴 했을까.” 하지만 무언가를 진심을 다해 좋아하는 사람만이 이런 말을 한다는 걸 우리는 안다. 섣불리 자신감에 차서 말하기보다 우선 영화와 마주하는 관객이 되기로 했다고 그는 말한다. “이번 직무를 통해서 앞으로 더욱 깊은 관객이 되자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어요. 어떤 메시지와 표현에도 뚫리지 않는, 모든 것을 흡수할 수 있는, 유연하고 깊은 관객이 되고 싶어요.”
송태호씨는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출장을 떠났다. 먼 지역으로 떠나는 건 아니었다. 오!재미동이 보유하고 있는 독립영화들을 수집하러 충무로로 향했다. 그가 2026년에 만들어갈 독립영화 수집 목록을 보다 더 넓히기 위해. 누군가가 몰입하여 세상에 내놓은 독립영화를 그늘진 곳에 두지 않기 위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