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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에 말투를 입히는 사람

홍보 담당자 여은정 인터뷰

아카이브에 말투를 입히는 사람

홍보 담당자 여은정 인터뷰

 
글: 배동미(씨네21)
사진: 백종헌(씨네21)


여은정

여은정씨를 만나 인터뷰를 하기로 한 12월10일, 김지미 배우가 세상을 떠났다. 한국의 대표 원로 배우 답게 스마트폰 뉴스 앱들은 원로 배우의 별세 소식을 푸쉬로 알렸다. 조금 있자 여은정씨의 손도 바빠졌다. 많은 언론사가 그에게 김지미 배우의 사진이나 영상 자료를 요청해 왔기 때문이다. 이런 날이면 그는 언론 소통 업무가 늘어난다고 한다. “기자분들에게 요청한 자료들을 제공 가능한 한 전달해드려요. 언론사이기 때문에 뉴스의 일부는 저작권과 관계없이 나갈 수 있거든요.” 거기서 끝이 아니다. 한국영상자료원 공식 SNS 담당자이기도 한 여은정씨는 직접 추모의 글도 써서 올린다. “여태껏 하셨던 작업 중 멋진 역할을 하신 걸 위주로 사진을 고른 다음 약력과 함께 부고 게시글을 올려요.” 한국영상자료원의 아카이브 시스템에 접속해 배우의 사진을 세심히 고르고, 그의 삶을 돌아보는 멘트를 고심하는 시간을 잠시 가진다.

이날 풍경은 조금 독특했지만, 평소 여은정씨와는 한국영상자료원 웹진 ‘아카이뷰’를 기획하는 회의 때 만나왔다. 기획 회의 때마다 그는 늘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며 웹진의 청사진을 그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리고 웹진의 처음은 물론 마지막까지도 책임지는 인물이라고 말이다. 그는 필자들이 쓴 기사나 에세이를 온라인에서 읽기 좋게 사진과 과거 자료를 적절히 배치하는 일종의 디지털 에디터 역할을 맡았다. 그렇게 2024년부터 꼬박 2년간 성실하게 만들어온 웹진 아카이뷰는 총 16호. 각 호마다 5편의 글이 실려있으니 여은정씨가 매만진 글만 해도 80편에 달했다.

웹진 아카이뷰 메인

“지난해 박홍열 촬영감독이 쓰신 ‘화면비 변화의 시작, 시네라마(Cinerama)’가 기억에 남아요. 제가 정보를 취하는 걸 되게 좋아하는 사람인가 봐요. 2014년에 본 자비에 돌란 감독의 <마미>에서 주인공이 스케이트보드를 탈 때 화면비가 달라지는 장면이 있어요. 그때 화면비로 이렇게 인물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구나 처음 느꼈어요. 그때 충격을 받은 나머지 지금까지 화면비에 관한 이야기와 글이 흥미로워요.” 웹진에 실린 많은 글 중에 어떤 글이 가장 기억에 남느냐는 질문에 그는 진지하고 정보량이 많은 글을 제일 먼저 골랐다.

올해 발행한 호 중에서는 시네마테크KOFA에서 열린 '낙원의 상흔, 그 너머의 빛: 스리랑카 영화 특별전' 개최에 연관된 스페셜 꼭지가 특별히 마음에 남았다고 한다. 산지와 푸시파쿠라마 감독에게 그가 직접 청탁하여 받은 스리랑카 영화사를 개괄하는 에세이에 애정이 간다고 했다. “글을 보면 자국 영화에 대한 산지와 푸시파쿠라마 감독의 애정과 열정이 느껴져요. 스리랑카 영화에 대한 장벽이 높아 아카이뷰가 아니라면 알기 어렵지 않을까요. 그 에세이가 아카이뷰가 추구해야 하는 ‘추구미’가 아닐까 생각해요.” 어디서도 읽을 수 없는 귀한 지식이 담긴 글. 이런 결의 글들로 풍성하게 채워지길 바라며 그는 아카이뷰를 매호 만들어가고 있다.

<태풍태양> 20주년 기념 상영회 SNS 콘텐츠

2025년 개봉 20주년을 맞은 <태풍태양>이 시네마테크KOFA에서 특별 상영되면서 아카이뷰에서도 정재은 감독과 김강우 배우를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인터뷰 장소에 먼저 나타난 정재은 감독은 한국영상자료원 SNS에 업로드된 홍보 이미지부터 칭찬했다. 당대 인기였던 싸이월드 홈페이지에다 <태풍태양> 스틸과 대사를 합성한 이미지인데, 여은정씨가 만든 것이었다. 정재은 감독처럼 누구든 그가 SNS에 올리는 글과 이미지를 보면 눈길이 간다고 인정할 것이다. 채용 공고문엔 라쿤이 “나 진짜 기다리고 있거든”이라고 말을 걸고, 한국영상자료원이 복원한 애니메이션 영화 <손오공>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상영된다는 소식을 전하며 “극락은 여기 있지 않습니다. 부천에 있습니다”라는 유머러스한 캡션을 붙였다. 한국영상자료원의 시네마테크KOFA, 한국영화박물관, 영상도서관 소식이 그의 손만 거치면 유쾌해졌고,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유현목 감독 관련 SNS 콘텐츠

“한국영상자료원이 주로 다루는 고전영화가 무겁다 보니 거리감을 깨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러기 위해 요즘 트렌드를 많이 관찰해요. 고전영화와 현재의 관객들이 쓰는 언어들을 조합해서 결이 맞는다고 판단되면 콘텐츠를 한번 구성해 봐요.” 그렇게 홍보 이미지 구성부터 업로드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어느 정도일까. “시간이 많지는 않아요. 홍보를 직접 콘텐츠를 만들어서 전달해 주시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사업이고 이러한 내용입니다. 홍보해 주세요’라고 알려주실 때도 있거든요. 업로드까지 며칠이 안 남았거나, 당일 올려야 하는 경우도 있죠. 그래서 되도록 홍보 이미지는 금방 만들려고 해요. 제가 너무 오래 고민한다고 결과물이 드라마틱하게 나아지지 않을뿐더러 사안에 시의적절하게 대응하기 위해서요.”

빠르게 일을 마무리하고 싶어도 실제로 속도를 높이는 건 다른 차원의 일이다. 그가 지금처럼 기민하게 홍보 일을 할 수 있었던 건 그동안 그가 트렌드를 읽는 밝은 눈을 길러왔기 때문이다. 그는 늘 트렌드 리포트를 주의 깊게 읽는다고 했다. 그리고 구독자들의 반응을 데이터로도 살핀다. “데이터를 보니 정보성 글이 가장 팔로우가 많이 늘고 반응도 좋더라고요. 아무래도 사람들이 우리 기관에서는 무언가를 얻고자 한다는 걸 느껴요. 단순히 이미지만 예쁘다고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이 안의 어떤 정보가 구독자들에게 도움이 되느냐에 따라서 반응이 따라오는 듯해요.” 기관의 걸맞은 방향성을 계속 고민한다는 그는 최근 데이터 분석 관련 자격 과정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여은정

전략기획팀에서 홍보를 담당하기 전까지 그는 3년간 이미지 심화 복원가로 일했다. 파주보존센터로 출근해 배창호 감독의 <고래사냥>, 이장호 감독의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등을 복원했다. “필름 상태에 따라 하루에 복원할 수 있는 양이 달라요. 아무래도 프레임 바이 프레임으로 작업을 하는 거라 어떨 땐 10프레임도 복원하지 못할 때도 있고 어떨 땐 하루에 1신을 다 복원할 때도 있었어요.”

그렇게 영화를 섬세하게 바라보는 일을 오랫동안 하다 보니 사람과 대면하면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왔다고 한다. 그가 직접 부서 이동을 요청하면서 2024년 전략기획팀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파주가 아닌 상암으로 출근한 첫날을 기억하냐는 질문에 그는 스스로가 “기계보다 사람과 잘 어울리는 사람”이란 걸 깨달았다고 했다. “사람이랑 소통하면서 에너지를 얻는 모습을 보고 나는 소통하길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많이 느꼈어요.” 그의 말을 듣고 보니, 그가 아카이뷰와 공식 SNS를 통해 소통하는 일을 즐기고 있다는 인상이 사실이구나 생각되었다.

긴 인터뷰를 마치고 발걸음을 옮기다 여은정씨의 전화를 받았다. 전해줄 게 있다고 했다. 다시 만난 그는 지름 5cm의 작은 CD 모양 키링을 손에 쥐여 주었다. NPC 기능을 킨 스마트폰을 키링에 대면 사운드트랙이 뜨는 굿즈라고 했다. 귀엽고 신기했다. 여은정씨는 아카이뷰 11월호 스페셜 기사 ‘음악이 기억을 데려오는 순간들’에 언급된 사운드트랙을 활용해 구독자들에게 선물할 작은 굿즈까지 뚝딱 만들어냈다. 홀로 굿즈를 구상하고 발주까지 맡았다고 한다. 눈앞의 키링을 신기하게 바라보자 그가 겸손하게 “일하면서 여러 능력을 키우는 것 같아요”라며 웃었다. 하나의 기사를 이렇게까지나 확장시킨 걸 보고 생각했다. ‘이 사람과 일하면 참신하고 흥미진진한 일이 벌어지는구나.’ 앞으로 그가 반짝하고 떠올릴 창의적인 발상과 그 결과물들이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