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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과 민소매, 경계의 미학

<야당> 곽정애 의상감독, 옷으로 완성한 경계인의 얼굴

정장과 민소매, 경계의 미학
<야당> 곽정애 의상감독, 옷으로 완성한 경계인의 얼굴

글: 김성훈(씨네21)
사진: 백종헌(씨네21)


곽정애 의상감독

지난 4월 극장 개봉해 337만여명(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집계)을 불러모은 영화 <야당>(감독 황병국)에는 여러 직업이 등장한다. 그중에서도 주인공 강하늘이 연기한 강수의 직업은 ‘야당’이다. 야당은 마약  범죄자와 수사기관을 번갈아 오가며 입무를 수행하는 경계인이다. 일반인에게 다소 생소한 직업을 가진 강수가 관객을 손쉽게 서사에 이끌 수 있었던 건 곽정애 의상감독의 솜씨도 한몫했다. 곽 의상감독은 마약 범죄자와 수사기관의 접점을 의상을 통해 잘 표현해냈다. <아가씨>(2016, 감독 박찬욱) <헤어질 결심>(2022, 감독 박찬욱), <서울의 봄>(2023, 감독 김성수) 등 많은 영화 속 의상을 설계한 곽정애 의상감독을 만났다. 

곽정애 의상감독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이야기가 어땠나.
시나리오 책 제목을 보니 야당? 제목을 따라간다는 말이 있듯이 야당이면 정치 이야기인가 해서 김원국 하이브미디어코프 대표님께 여쭈었더니 ‘그 야당이 아니’라고 하더라. 야당이라 불리는 직업과 그 세계에 관해 설명을 들었는데 생전 처음 들어보는 직업이라 흥미가 생겼다.  

이야기는 어땠나.
마약이라는 아주 무거운 소재를 다룬 이야기다 보니 마약 범죄의 심각성이 크게 와닿았다. 마약 범죄가 코앞까지 온 것 같아 섬뜩했다. 마약 범죄를 근절하는데 이 영화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은 사명감이 생겼다. 영화를 잘 만들어서 많은 관객에게 마약 범죄의 실체를 알려야겠다 싶었다. 

영화는 야당, 검사, 형사, 마약 범죄자, 피해자 등 여러 캐릭터가 등장하는 이야기다. 의상감독으로서 이 작품이 어떤 도전이 될 거라고 생각했나.
검사, 마약 사범, 정치인은 뉴스나 시사 방송을 통해 늘 노출되어 있지만, 야당은 매스컴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직업은 아니지 않나. 본 적도 없고, 얘기를 나눠본 적도 없어서 상상 속의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야당을 어떻게 접근하는 게 좋을까 고민했던 것도 그래서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야당은 수시기관과 섞였을 때도 잘 어울리고, 반대로 마약 범죄자들과도 잘 어울리는 인물이라고 생각하니까 단서가 잡히는 것 같았다. 

어느 쪽과도 잘 어울린다는 직업적 특성이 인물의 외양을 표현하는데 매력적으로 작용한 셈이다.
그게 이 작품을 하기로 한 이유다. 마약 사범들과 있을 때는 너무 회사원 같지 않게, ‘조폭’ 같으면서도 아닌 것 같고, 마약 하는 사람 같으면서도 또 아닌 것 같은 가벼운 느낌을 주고자 했다. 검사나 형사들과 어울릴 때는 예의를 갖추되 너무 무겁지 않게 보이고자 했다.

(좌) <파이트클럽> 잭 역 에드워드 노튼, (우) <야당> 강수 역 강하늘

* (좌) <파이트클럽>의 잭(에드워드 노튼), (우) <야당>의 강수(강하늘)

전체 의상 컨셉을 설계하기 위해 특별히 참조한 이미지가 있나.
처음에는 감독님께서 이야기를 다큐멘터리처럼 사실적으로 묘사하려고 하셨지만 프리 프로덕션 과정을 거치면서 필터링을 잘 거친 상업영화가 됐다. 영화의 비주얼을 담당하는 사람으로서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1999년 작 <파이트 클럽>에서 영감을 받았다. 이 영화의 주인공이자 각기 다른 자아를 가진 회사원 잭(에드워드 노튼)은 강수(강하늘)의 외양을 표현하는데 참조가 됐다. 물론 잭은 백인이라 SMAP의 멤버인 기무라 다쿠야가 가진, 너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이미지를 토대로 강수의 외양을 설계했다. 

말씀대로 강수는 경계에 선 인물이다. 마약사범과 검사, 경찰의 중간에서 활동하는 야당이다. 합법과 범법의 경계에 선 캐릭터라 의상감독으로선 여러모로 접근하기가 흥미로웠을 것 같다. 특히 강수가 입은 의상이 재미있는 게, 검은색 정장 차림이지만, 정장 자켓 안에 일반 셔츠가 아닌 민소매를 배치해 자유분방함을 더했다는 사실이다.
영화는 강수가 어떻게 야당이라는 직업을 가지게 됐는지부터 보여주지 않나. 대리운전하다가 어떤 사건에 휘말리면서 야당에 발을 들이게 된다. 야당이 되기 전 그는 스냅백 모자를 쓰고, 돈 관리를 해야 하니 가방도 늘 멘다. 젊은 백수의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서로 부딪히는 컬러의 의상을 배치했다. 야당이 되면서 비즈니스를 해야 하니 정장 차림을 해야 하지만, 스타일이 너무 무겁지 않고 평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싶었다. 조거 팬츠에 목이 높은 조던 운동화를 설정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자유로움과 멋을 드러내기 위해 정장 자켓 안에는 셔츠가 아닌 민소매 나시를 배치하고, 선글라스를 착용하게 했다.  

정장 자켓 안에 민소매를 입힌 건 확실히 과감하고 자유로워 보이더라.
자켓을 걷어올릴 때 팔이 드러나는 라인과 동작이 보여주는 이미지도 중요했고. 바람이 불 때 강수가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길 때 ‘올백’이 되는 이미지도 떠올랐고. MZ 세대 스태프들이 민소매 차림에 정장 입은 모습을 좋아해 주었다. 강수는 경계에 선 인물이자 이야기의 매듭을 짓는 캐릭터라 강수의 이미지를 잘 보여주는 게 관건이었다. 

<야당>의 관희(유해진)

* <야당>의 관희(유해진) 신분 상승에 따라 변화된 의상

관희(유해진)는 신분 상승의 욕망에 충실한 전형적인 검사다. 같은 정장 차림이더라도 사건이 전개되고, 관희의 신분이 상승하면서 의상도 덩달아 변화하는 게 재미있더라.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관희는 서울 근교의 지방에서 사건도 없고, 무료하게 살아가는 별 볼 일 없는 검사 같은 느낌이 있었다. 강이든 바다든 혼자 앉아서 물고기가 잡히든 말든 시간을 때우는 모습이 연상됐다. 그러다가 고기가 걸리고, 욕심이 생겨서 고래를 잡으러 남태평양까지 나갔는데 어마어마하게 큰 물고기의 밥이 된 안타까운 인물이랄까. 

관희가 강수를 만난 뒤로 광주지검, 서부지검, 동부지검, 중앙지검으로 출세하면서 그의 정장 차림도 스타일이 변화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한직 시절 관희는 검소하고 소박한 정장 차림이고, 넥타이도 풀거나 느슨하게 메여져 있다가 계급이 상승하면서 정장, 셔츠, 넥타이가 각 잡히고, 때때로 안에는 조끼를 입은 차림으로 변화한다.
관희 의상의 변곡점은 그가 있는 자리라고 생각했다. 자리에 맞는 의상을 시각적으로 보여줘야 신분이 상승했다는 것을 드러낼 수 있으니까. 황병국 감독님께서도 서부지검, 중앙지검 명찰을 옷에 달 수 없으니, 관희의 위치를 의상으로 보여달라고 주문하셨다. 처음에는 넥타이를 느슨하게 매거나 아예 풀어헤쳐서 무료한 느낌을 표현했고, 중앙지검을 향해 갈수록 시계, 커프스 등 몸에 달리는 게 많아지고, 옷이 점점 무거워진다. 지위의 무게감을 확 실으려고 했는데 유해진 선배님께서 ‘이것도 차야 해?’ 하면서 답답해하셨다. (웃음) 

<야당>의 상재(박해준)

* <야당>의 상재(박해준)

상재(박해준)는 형사임에도 자켓 안에 다양한 셔츠를 설정하거나 가죽 잠바로 포인트를 살려 형사치고는 세련된 의상을 입었다.
상재는 일반 형사가 아니라 마약 수사대 형사다. 마약 수사대 형사를 만나보니 이들은 실제로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쓰더라. 머리카락 염색도 하고, 귀고리도 차고, 일수 가방도 들고, 심지어 문신도 새긴다. 형사임을 숨기고, 마약 사범들 사이에 있어도 전혀 어색함이 없게 위장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한다. 마약 범죄를 수사하는 형사들만의 애환과 고충이 있더라. 그들을 취재한 게 상재 의상을 설계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됐다. 

곽정애 의상감독은 배우의 성격적 특징을 잘 캐치해서 의상에 적극 반영, 활용하는 스타일로 유명하다. 배우가 가진 특징이 의상에 반영된 부분도 있나.
결국 영화 의상은 배우들의 신체적 특징을 반영해 설계하는 옷이기에 배우들의 협조나 아이디어가 중요하다. 하늘씨는 늘 긍정적이고, 아이디어를 많이 내주고, 해준씨는 ‘츤데레’ 같은 매력이 있다. (유)해진 선배님은 이야기 후반부로 갈수록 의상을 겹쳐 입는 설정이어서 쉽지 않았는데도 잘 협조해 주셨다. 



지난해 말 개봉해서 올해 초에 상영했던 <하얼빈>은 이제껏 봐왔던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한국 영화 속 독립군 의상과 좀 달랐다. 사건과 캐릭터에 맞게 해석한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하얼빈>은 육체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굉장히 힘든 작품이었다. 의상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새로 만들어야 했고, 추운 겨울이 시간적 배경이라 배우들도 옷을 겹겹이 입어야 해서 힘들었을 것이다. 옷을 통해 그때 분위기를 내야 했으며, 옷이 주는 무게감이 또 달랐다. 우민호 감독님께서도 배우도, 스태프도 ‘독립운동한다는 심정으로 작품에 임하라'는 말씀을 거듭 강조하셨다.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은 까닭에 촬영이 끝난 뒤 4개월 정도 병원을 다녀야 했을 만큼 온몸이 아팠었다.  

평소 영감은 어디서 얻는 편인가. 
자연이나 명화를 뚫어져라 보고 있으면 아이디어가 떠오르곤 한다. 이렇게 변주를 주면서 하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하고, 그래도 안 풀릴 때는 조금씩 만들어가면서 계속 수정한다. 

차기작은 무엇인가.
하이브미디어코프가 제작하는 디즈니+ 시리즈 <메이드 인 코리아>를 준비하고 있다. 1970년대 부와 권력에 대한 야망을 갖고 있는 백기태라는 캐릭터와 그를 막기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지 검사의 이야기다. 우민호 감독님이 연출하고, 현빈과 정우성이 출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