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다면
광복 80주년 기념 VOD 기획전 <해방과 번영의 신화>
광복,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다면
광복 80주년 기념 VOD 기획전 <해방과 번영의 신화>
글: 김기호(한국영상자료원)

* KMDb VOD 기획전 <해방과 번영> 메인이미지
드론과 AI 생성 영상이 휩쓸고 지나간 80번째 광복절이었다. 원본의 보존과 회복(복원)을 제1의 가치로 하는 우리는 기록영상을 가공하기보다는 그 안의 의미를 꺼내어 엮어보기로 했다. 솔직히 ‘줄거리’의 시각에서 기록영상을 보면 한 두 줄로 정리할 수 있겠지만, 그 안의 ‘공기’와 ‘맥락’은 무수히 많고 깊다. 이로부터 비교적 단촐한 VOD 기획전의 형태로 큐레이션하는 것은 꽤 고민되는 일이다. 그렇게 나온 프로그램명, <해방과 번영의 신화>에는 ‘신화’의 중의적 의미를 담아, 소위 ‘국뽕’이 가득 함유된 제목이면서 실은 ‘잘못/덜 알려진 상식’을 자세히 들여다보자는 의도를 드러내고자 했다. 이와 관련해서 지면이 좁아서 생략한 얘기를 조금 더 풀어보겠다.
80년 전의 일은 그때 살던 사람들의 경험일 뿐, 오늘의 일상과 관계 없는 것처럼 되기 쉽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어쩌면 몇 장의 독립만세 사진과 문화강국을 염원하던 김구 선생의 밈(meme) 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은 어느날 한국의 독립 결정 - 8월 15일 소식 전파 - 온 국민 감격 - 두려움에 휩싸여 본국에 돌아가는 일본인 - 끝, 이런 식으로 간단명료하게 전개된 것이 아니었다. 원래 연합국에 있어서 한국은 자주국가로서의 역량이 없는 많은 식민국 중 하나로서 수 년에서 수십 년 공동신탁통치하는 것으로 사실상의 ‘처분' 기본방침이 정해져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카이로 회담 중에 중화민국의 강력한 주장으로 한국 독립 조항이 포함된 것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긴 세월의 외교적 노력의 결실이었다. 임정 뿐 아니라 수많은 독립 조직과 독립지사들은 이미 세계 곳곳에서 여러가지 형태로 끊임없이 ‘한국은 국권을 강탈됐다’, ‘한국은 비인도적인 상황에 처했다’, ‘한국은 독립을 원한다’는 목소리를 내었다. 그 땀과 희생이 세계의 여론을 움직였고 연합국은 (비록 허울 뿐이었을지라도) 민족자결주의와 인도주의의 외피를 입고 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독립이 오로지 무력과 국력의 산물만은 아니라는 말이다.

* <경성에 진주하는 미군들, 제주도의 일본 항복 조인식>(3:55)
1945년 9월 28일, 항복문서 조인식이 있었던 농업공립학교(일본 제58군 본부)에서 경비병이 미군의 카메라에 공손한 표정으로 응시하는 모습. 완장에 ‘A. U.’ (Army Unit), ‘米國’(미국)이라고 쓴 부분이 살짝 보인다.

* <경성에 진주하는 미군들, 제주도의 일본 항복 조인식>(1:14)
1945년 9월 24일, 미군이 현재의 서울 을지로입구역 부근 남내문로를 활보하며 촬영한 장면. 뒤의 건물은 ‘조선총독부도서관’으로서 조선인의 사상 지도 및 통제 역할을 수행했다. 몇 주 후 ‘국립도서관’으로 개관(국립중앙도서관의 첫 건물)된다.
또한 해방공간의 첫 몇 달은 감격과 만세소리로만 채워진 것은 아니었다. 국제법이 체계화되지 못했던 시기였으므로 미군은 당대의 국제점령법과 그 취지에 따라 항복문서 조인, 군사 및 행정 권한 인계 등의 일련의 행정적 절차를 엄격히 이수하여 법적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했다. 그래서 각지의 일본군은 본국으로 귀환하지 못하고 미국의 항복접수단과 무장해제파견대가 도착해서 이러한 절차를 진행하기 전까지 긴장 속에 대기해야 했다. 국가간의 일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물며 일본이 35년간 이 땅에 이식한 전형적인 식민지 통치 시스템, 특히 조직과 건물이 자유 대한민국에 맞게 조정 또는 정리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었다. 미군정과 한국정부 모두에게 짧은 기간에 그럴만한 비용을 마련하는 것은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공식적인 독립 이후 우리는 오랜 기간 실질적인 독립의 상태로 나아가는 길을 달려왔다고 볼 수 있다.

* <경성에 진주하는 미군들, 제주도의 일본 항복 조인식>(0:51)
1945년 9월 24일, 미군이 남대문로를 걷는 장면 뒤로 ‘조선미곡창고주식회사 경성지점’이라 적힌 셔터가 내려 있다. 조선미곡창고주식회사는 조선쌀을 일본으로 반출하는 양을 조절하고 운송보험 업무를 하는 수탈 기관 중 하나였다.
* (좌) <경성에 진주하는 미군들, 제주도의 일본 항복 조인식>(4:9)
항복조인식장 입구에 ‘WELCOME ALLIED FORCES'(연합군을 환영합니다)라고 적은 판을 달아놓고 성조기를 세워놨다.
* (우) <경성에 진주하는 미군들, 제주도의 일본 항복 조인식>(3:41)
일본 제58군 본부였던 항복조인식장(제주 농업공립학교) 정문. 표시된 부분은 조선인 정신통제를 위해 강조하던 슬로건 ‘국체명징’(國體明徵, 상단), ‘내선일체’(內鮮一體, 오른쪽 기둥), ‘인고단련’(忍苦鍛鍊, 왼쪽 기둥)이 적혀 있던 자리이다.
이번 기획전에는 이런 배경을 은근히 또는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기록영상 10편이 수록되어 있다. 광복의 여러 신화들에 대한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정서적 공감에까지 닿기 위한 시작 지점으로 각 영상에 대한 해설과 링크들을 마련했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광복을 설명하기 위해 수록된 이 영상의 대부분이 미군의 자체 기록물이거나 미군정 또는 공보의 일환으로 촬영됐다는 점이다. 이것이야말로 여러모로 의도치 않은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영상들을 통해 우리는 - 물론 그 이후로도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 우리가 어떻게 오늘날 ‘한국인’이라는 공동체의 이름으로 세계의 한 일원이 되었는지, 어떻게 매일 황국신민서사를 외우거나 별도의 교육 및 경력 제한 규칙에 갇히지 않고 최소한 능력껏 삶을 꾸릴 수 있게 되었는지 경험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나아가 자기 생존도 불투명한 상태에서 민족 공동체의 해방을 위해 삶을 내던지는 불가사의한 사람들에 대해 조금은 이해하게 되고, 잊혔거나 이름 없는 지사들을 새로이 접하고 앞으로의 기억에 넣을 수 있는 기회가 되면 더 좋겠다. 1960년대 말의 울산 중공업단지와 서울의 빌딩숲을 담은 마지막 2개의 영상은 지금 우리의 시각에서 진부한 선전이자 그 이면의 많은 논란과 부작용을 떠올리게 하는 영상일 수 있지만 당대의 사람들에게는 진정으로 감격스러운 신화였을 것이고 스러져간 독립지사들이 꿈꿨던 모습일 수도 있을 것이다.
* <1948년의 한국 : 인천항, 부산 노동절 대회, 초대 대통령 취임식>(0:45)
1948년 인천 미군 막사 부근. 태평양전쟁 중인 1943년부터 일제가 보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천의 조선기계제작소를 급히 개조하여 생산했던 수송용 잠수정 마루유(まるゆ)의 잔해가 방치돼 있다.
우리의 근현대사는 역사의 해석과 결론이 분분한 격전지이다. 하지만 그 어떤 이유로도 왜곡되거나 부정되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헌신한 사람들의 공로와 그들이 바랐던 국제적 평화다. 기록영상은 사진, 기사, 서적, 행정문서 등 다른 여러 자료들과 함께 한 목소리로 이 사실을 부르짖고 있다. 단절됐던 과거와 논리적, 정서적으로 다시 접속하는 것은 우리 존재를 복원하는 것과 같다. 그런 의미로 당초 9월 14일까지 기한을 뒀던 이번 기획전은 연장 상영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