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이 해체되고 자신을 둘러싼 범죄 세계마저 변화하기 시작하면서, 테츠는 야쿠자의 삶을 뒤로한 채 새로운 길을 찾고자 한다. 그러나 경쟁 조직의 추격과 옛 보스에 대한 변함없는 충성심은 그를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정착할 곳 없이 도시에서 도시로 떠도는 그의 여정은 과거로부터 멀어질수록 더욱 깊은 고독으로 이어지고, 방랑하는 야쿠자는 충성과 자유 사이에 떠도는 신화적 존재로 변모한다. <동경 방랑자>는 스즈키 세이준이 야쿠자 영화를 급진적으로 재해석한 대표작 가운데 하나다. 사실주의를 과감히 벗어나 강렬한 색채와 추상성, 그리고 유희적인 과잉을 전면에 내세우며 익숙한 범죄 서사를 눈부신 영화적 실험으로 탈바꿈시킨다. 주인공이 적들에게 공포를 심어주기 위해 자신의 주제가를 직접 부르는 순간은, 그 대담한 양식적 감각만으로도 거의 초월적인 경지에 이른다. 영화 곳곳에 흩뿌려진 이러한 경이로운 발상들은 장르영화는 물론 국제 아방가르드 영화에까지 깊은 영향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