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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영화자료총서

신문기사로 본 조선영화 1927

일제강점기 식민지 조선의 신문에 실린 영화와 연예관련 기사와 광고들을 연대순으로 채록·정리한 ‘신문기사로 본 조선영화’ 시리즈의 여덟 번 째 권. 1927년 매일신보, 조선·동아·중외일보에 실린 영화 및 연예 기사와 광고를 망라하고 있다.

조선영화, 황금기를 구가하다
1927년은 <아리랑>의 성공으로 조선영화 제작이 폭증한 해였다. 이 해 조선영화계는 <들쥐> <금붕어> <먼동이 틀 때> 등 14편을 내놓았는데, 이는 1926년의 2배 이상의 수치였다. 이와 함께 나운규프로덕션, 금강키네마, 조선영화예술협회, 서광키네마 등 제작사 역시 급증하게 된다. 이 기간 가장 성공적인 제작 실적을 보인 제작사는 조선키네마프로덕션이었다. 이 회사는 1926년 <농중조> <아리랑> <풍운아> 등을 제작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고, 1927년에는 <들쥐>, <금붕어>를 제작했다. 그러나 경영자와의 불화로 나운규, 이경손 등이 탈퇴하자, <뿔 빠진 황소>를 마지막으로 제작을 접게 된다. 한편 나운규, 이경손 등은 조선키네마프로덕션을 탈퇴한 후 단성사 경영주인 박승필의 지원을 받아 나운규프로덕션을 창립하고 <잘 있거라>를 내놓았다. 

외화전문 토착 배급사 설립되다
1927년은 외화배급에 있어 새로운 전환기였다. 그 전환의 시작은 1927년 5월, 조선인이 경영하는 전문 외화배급사, 기신양행의 설립이었다. 당시 외화는 서양인이 주로 배급했으며, 일본에서 먼저 상영한 후 조선에 재수입하기 때문에 필름 상태가 좋지 않고, 수급이 원활치 않아 불법 복제본이 성행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기신양행의 등장은 환영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기신양행은 메트로골드윈메이어(M.G.M)와의 특약을 시작으로, 8월에는 파라마운트와도 특약관계를 맺었고 U.A와 그 외 작은 회사의 영화도 배급했다. 또 일본인이 운영하는 덕영상회는 일본의 동서영화주식회사의 경성 대리점이 되어 워너부라더스, F.B.O 사 등의 영화를 경성에 배급하게 된다. 이 두 회사의 등장으로 외화의 배급이 체계화되면서 영화문화가 성장하는 한 계기가 된다.  

검열수수료, 분쟁의 대상이 되다
1926년 실시된 활동사진필름검열규칙에 의해 검열은 보다 강화되었고 조선영화는 여러 이유로 검열상의 제재를 당한다. 예를 들어 <불망곡>은 영화의 스토리 및 연기가 잔인하다는 등의 이유로 상영허가를 받지 못해 재촬영을 했고 <들쥐>는 불온하다는 등의 이유로 상영금지 처분을 당하기도 했다. 검열이 강화된 것도 문제였지만 극장경영자와 영화배급업자에게 영업이익의 손실을 가져오는 직접적이고 더 큰 문제는 검열수수료였다. 3미터 당 5전으로 책정된 이 검열수수료에 부담을 느낀 극장경영자, 영화배급업자들은 1926년에 이어 1927년에도 총독부 경무국에 검열요금 인하를 요구한다. 그러나 조선총독부 당국은 이에 불응, 검열수수료를 둘러싼 당국과 영화배급 및 상영업자 간의 갈등은 해를 넘기며 이어지게 된다. 
연구기획 및 진행: 조준형(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사연구소 소장)
공동연구원: 최은숙, 조외숙, 이광욱, 이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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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문의: 02-3153-20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