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영화자료총서
신문기사로 본 조선영화 1930
일제강점기 조선의 주요 일간지에 실린 영화 및 연예 기사와 광고들을 연대순으로 모아 정리하는 ‘일제강점기 영화자료총서: 신문기사로 본 조선영화’ 시리즈 제11권. 1930년 동아일보, 매일신보, 조선일보, 중외일보의 관련 기사 총망라.
1930년, 격화하는 논쟁: 무식한 광견 vs. 무지한 필님충
1928년 점화된 조선영화계의 담론 투쟁은 1930년 극에 달했다. 프롤레타리아영화운동을 주장하는 비평계와 실제 제작 여건의 열악함을 고려해야 한다는 기존 영화인들의 견해가 첨예하게 충돌한 것이다. 1930년 1년 동안 10편의 작품이 공개되었고 매 작품마다 논쟁을 불러일으켰는데, 특히 나운규가 관여한 <아리랑 후편>(이구영) 및 <철인도>(나운규)를 둘러싸고는 더욱 적나라해졌다. 비평계는 이들 작품을 가리켜 봉건적이고 영리 추구에 급급하다며 공격했고, 현장의 영화인들은 이러한 비난이 현실을 모르는 채 해외의 비평 사조를 모방했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이 논쟁은 급기야 인신공격으로 이어져 서로를 향해 ‘무식한 광견(狂犬)’, ‘무지한 필님충(film蟲))’ 등의 비난을 서슴지 않게 되는바, 흥미진진한 한편에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필름식 발성영화 공개
1930년 경성에서 처음으로 필름식 발성영화가 상영되었다. 1월 27일, 단성사에서 <도라몬드 대위>(Captain Swagger, E. H. 그리피스, 1928)와 <순회극단>(The Spieler, 테이 가넷, 1928)이, 조선극장에서 <네 날개>(The Four Feathers, M. C. 쿠퍼 외, 1929)가 공개된 것이다. 그러나 열악한 영사 설비와 언어 문제로 인하여 발성영화는 기대만큼의 성적을 올리지 못했고, 불황에 직면한 흥행계는 발성영화 상영을 위해 극장 설비를 교체하는 대신 연희 공연과 무성영화 상영으로 회귀하는 전략을 취했다. 한편, 이필우 등의 영화인들이 의욕적으로 발성영화 제작을 시도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조선 최초의 발성영화가 등장하기까지는 아직 몇 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발성영화를 둘러싼 다양한 평론과 안타까운 불발 기사들은 이른바 조선영화계의 특수성과 세계영화계의 흐름 사이에서 고민하던 당대 영화인들의 고민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마케팅 신전략: 영화 시나리오 게재
1930년도 신문지상에는 <노래하는 시절>(안종화, 원작·각색 안석영)를 비롯하여 <화륜>(김유영, 이효석·안석영·서광제·김유영 연작) 등 상당히 구체적인 내용의 영화 시나리오가 연재되기 시작한다. 이전 ‘영화소설’이라는 제목으로 줄거리만을 주로 소개하던 연재와 달리, 지문과 대사는 물론이거니와 화면 크기와 카메라워크 등 기술적인 측면들이 기재되고 스틸까지 공개된 것이다. 특히 <노래하는 시절>은 신문 연재와 더불어 개봉일에 맞춰 단행본까지 출간, 관객의 관심을 높여 흥행에서도 크게 성공한다. 이는 조선영화계의 침체를 타개하기 위한 일종의 마케팅 전략이지만 일제강점기 필름이 많이 남아있지 않은 현재, 당대 작품들의 면모를 그려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해 주기도 한다.
1930년, 격화하는 논쟁: 무식한 광견 vs. 무지한 필님충
1928년 점화된 조선영화계의 담론 투쟁은 1930년 극에 달했다. 프롤레타리아영화운동을 주장하는 비평계와 실제 제작 여건의 열악함을 고려해야 한다는 기존 영화인들의 견해가 첨예하게 충돌한 것이다. 1930년 1년 동안 10편의 작품이 공개되었고 매 작품마다 논쟁을 불러일으켰는데, 특히 나운규가 관여한 <아리랑 후편>(이구영) 및 <철인도>(나운규)를 둘러싸고는 더욱 적나라해졌다. 비평계는 이들 작품을 가리켜 봉건적이고 영리 추구에 급급하다며 공격했고, 현장의 영화인들은 이러한 비난이 현실을 모르는 채 해외의 비평 사조를 모방했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이 논쟁은 급기야 인신공격으로 이어져 서로를 향해 ‘무식한 광견(狂犬)’, ‘무지한 필님충(film蟲))’ 등의 비난을 서슴지 않게 되는바, 흥미진진한 한편에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필름식 발성영화 공개
1930년 경성에서 처음으로 필름식 발성영화가 상영되었다. 1월 27일, 단성사에서 <도라몬드 대위>(Captain Swagger, E. H. 그리피스, 1928)와 <순회극단>(The Spieler, 테이 가넷, 1928)이, 조선극장에서 <네 날개>(The Four Feathers, M. C. 쿠퍼 외, 1929)가 공개된 것이다. 그러나 열악한 영사 설비와 언어 문제로 인하여 발성영화는 기대만큼의 성적을 올리지 못했고, 불황에 직면한 흥행계는 발성영화 상영을 위해 극장 설비를 교체하는 대신 연희 공연과 무성영화 상영으로 회귀하는 전략을 취했다. 한편, 이필우 등의 영화인들이 의욕적으로 발성영화 제작을 시도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조선 최초의 발성영화가 등장하기까지는 아직 몇 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발성영화를 둘러싼 다양한 평론과 안타까운 불발 기사들은 이른바 조선영화계의 특수성과 세계영화계의 흐름 사이에서 고민하던 당대 영화인들의 고민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마케팅 신전략: 영화 시나리오 게재
1930년도 신문지상에는 <노래하는 시절>(안종화, 원작·각색 안석영)를 비롯하여 <화륜>(김유영, 이효석·안석영·서광제·김유영 연작) 등 상당히 구체적인 내용의 영화 시나리오가 연재되기 시작한다. 이전 ‘영화소설’이라는 제목으로 줄거리만을 주로 소개하던 연재와 달리, 지문과 대사는 물론이거니와 화면 크기와 카메라워크 등 기술적인 측면들이 기재되고 스틸까지 공개된 것이다. 특히 <노래하는 시절>은 신문 연재와 더불어 개봉일에 맞춰 단행본까지 출간, 관객의 관심을 높여 흥행에서도 크게 성공한다. 이는 조선영화계의 침체를 타개하기 위한 일종의 마케팅 전략이지만 일제강점기 필름이 많이 남아있지 않은 현재, 당대 작품들의 면모를 그려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해 주기도 한다.
연구진
연구기획 및 진행: 이유미(한국영상자료원)
공동연구원: 최은숙, 조외숙, 이광욱
연구기획 및 진행: 이유미(한국영상자료원)
공동연구원: 최은숙, 조외숙, 이광욱
발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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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신문기사 본문(해제 포함)
목록(기사, 극장, 영화사 및 단체, 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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