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영화자료총서
신문기사로 본 조선영화 1928
일제강점기 조선의 주요 일간지에 실린 영화 및 연예 기사와 광고들을 연대순으로 모아 정리한 ‘일제강점기 영화자료 총서: 신문기사로 본 조선영화’ 시리즈 제9권. 1928년 동아일보, 매일신보, 조선일보, 중외일보의 관련 기사 총망라.
1928 조선영화계, 치열한 반성과 논쟁의 현장
1927년 14편의 영화를 제작하는 기염을 토했던 조선영화계는, 1928년 숨을 고르는 동시에 기존의 조선영화 전반에 대한 반성과 논쟁을 시작했다. 1월 1일 심훈이 발표한 ‘조선영화의 현재와 장래’를 비롯하여, 4월부터는 기존의 조선영화계에 대한 카프 진영 필자들의 맹렬한 비판이 게재되었으며 이에 대한 반박과 재반박이 1928년 조선영화계의 여름을 뜨겁게 달궜다. 특히 중외일보에 9회에 걸쳐 연재된 만년설의 ‘영화예술에 대한 관견(管見)’, 8회에 걸쳐 연재된 임화의 ‘조선영화가 가진 반동적 소시민성의 말살’ 등은 조선 사회와 영화에 대한 당대 필자들의 열정과 고민을 엿볼 수 있게 한다. 흥미진진한 설전뿐만 아니라, 종래 줄거리 소개에 그치던 영화 비평이 여러 측면에서 전문화·세분화되는 과정도 1928년 신문기사를 통해 살펴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영화열 확산
중앙의 영화인들이 담론전을 벌이던 사이, 영화열은 지방으로 관객으로 확산되었다. 1927년 기신양행 설립 이래 해외 영화 배급이 원활해져 미국영화뿐만 아니라 러시아 등 다양한 유럽 영화들이 소개된 것이 여기에 한몫했다. 공락관(청진), 원산관(원산), 광남관(광주), 강경극장(강경), 만경관(대구), 이리극장(이리), 애관(인천) 등 지방 극장들이 신개축되었고, 임수호 활동사진일행 등 지방순업대들의 활약도 두드러졌다. 한편, 1928년에는 조선 최초로 이른바 영화팬클럽이 조직되었다. 자발적인 동호회라기보다는 안정적 관객 확보를 도모한 극장 사업의 일환으로 출발했지만, 10월 16일 ‘조선극장팬구락부’ 발회식에는 300명가량의 회원이 참석했으며 12월 24일 ‘단성영화구락부’의 창립기념식에는 당일 가입 회원 백여 명을 포함하여 무려 천여 명의 회원이 참석했다고 하니 당대 영화팬들의 영화 사랑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검열수수료 드디어 인하
1926년 활동사진필림검열규칙 시행 이래 조선영화계는 영화검열뿐만 아니라 검열수수료 부담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렸다. 이에 영화업자들을 중심으로 전조선의 영화인이 단결하여 세 번의 대대적인 검열료 인하 운동을 펼친바, 1928년 9월 19일 마침내 총독부는 활동사진필림검열규칙을 개정하고 검열수수료를 인하한다. 영화검열료가 3m 당 5전에서 1m 당 1전으로, 재검열료가 3m 당 2전에서 1m 당 0.5전으로 50%이상 감하됨으로써 숙원을 이룬 조선의 흥행계를 가리켜 당시의 신문은 ‘벙글벙글’이라 표현했다.
1928 조선영화계, 치열한 반성과 논쟁의 현장
1927년 14편의 영화를 제작하는 기염을 토했던 조선영화계는, 1928년 숨을 고르는 동시에 기존의 조선영화 전반에 대한 반성과 논쟁을 시작했다. 1월 1일 심훈이 발표한 ‘조선영화의 현재와 장래’를 비롯하여, 4월부터는 기존의 조선영화계에 대한 카프 진영 필자들의 맹렬한 비판이 게재되었으며 이에 대한 반박과 재반박이 1928년 조선영화계의 여름을 뜨겁게 달궜다. 특히 중외일보에 9회에 걸쳐 연재된 만년설의 ‘영화예술에 대한 관견(管見)’, 8회에 걸쳐 연재된 임화의 ‘조선영화가 가진 반동적 소시민성의 말살’ 등은 조선 사회와 영화에 대한 당대 필자들의 열정과 고민을 엿볼 수 있게 한다. 흥미진진한 설전뿐만 아니라, 종래 줄거리 소개에 그치던 영화 비평이 여러 측면에서 전문화·세분화되는 과정도 1928년 신문기사를 통해 살펴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영화열 확산
중앙의 영화인들이 담론전을 벌이던 사이, 영화열은 지방으로 관객으로 확산되었다. 1927년 기신양행 설립 이래 해외 영화 배급이 원활해져 미국영화뿐만 아니라 러시아 등 다양한 유럽 영화들이 소개된 것이 여기에 한몫했다. 공락관(청진), 원산관(원산), 광남관(광주), 강경극장(강경), 만경관(대구), 이리극장(이리), 애관(인천) 등 지방 극장들이 신개축되었고, 임수호 활동사진일행 등 지방순업대들의 활약도 두드러졌다. 한편, 1928년에는 조선 최초로 이른바 영화팬클럽이 조직되었다. 자발적인 동호회라기보다는 안정적 관객 확보를 도모한 극장 사업의 일환으로 출발했지만, 10월 16일 ‘조선극장팬구락부’ 발회식에는 300명가량의 회원이 참석했으며 12월 24일 ‘단성영화구락부’의 창립기념식에는 당일 가입 회원 백여 명을 포함하여 무려 천여 명의 회원이 참석했다고 하니 당대 영화팬들의 영화 사랑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검열수수료 드디어 인하
1926년 활동사진필림검열규칙 시행 이래 조선영화계는 영화검열뿐만 아니라 검열수수료 부담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렸다. 이에 영화업자들을 중심으로 전조선의 영화인이 단결하여 세 번의 대대적인 검열료 인하 운동을 펼친바, 1928년 9월 19일 마침내 총독부는 활동사진필림검열규칙을 개정하고 검열수수료를 인하한다. 영화검열료가 3m 당 5전에서 1m 당 1전으로, 재검열료가 3m 당 2전에서 1m 당 0.5전으로 50%이상 감하됨으로써 숙원을 이룬 조선의 흥행계를 가리켜 당시의 신문은 ‘벙글벙글’이라 표현했다.
연구기획 및 진행: 이유미(한국영상자료원)
공동연구원: 최은숙, 조외숙, 이광욱
공동연구원: 최은숙, 조외숙, 이광욱
발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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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신문기사 본문
목록(기사, 극장, 영화사 및 단체, 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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