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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영화자료총서

신문기사로 본 조선영화 1932

일제강점기 조선의 주요 일간지에 실린 영화 및 연예 기사와 광고들을 연대순으로 모아 정리하는 ‘일제강점기 영화자료총서: 신문기사로 본 조선영화’ 시리즈 제13권. 1932년 동아일보, 매일신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4개 신문에 실린 관련 기사 및 광고 총망라. 

1932년, 미약한 회복의 기운
1931년 경제 불황의 여파로 매우 침체되었던 조선영화계는 1932년 미약하나마 회복의 기운을 보였다. <개화당이문>(나운규)을 필두로 제작에 착수하거나 개봉한 영화가 전년에 비해 늘었고, 평양키노·동방키노 등 신생영화사들도 적지 않게 등장했다. 극장에서는 발성영화 상영이 본격화되는 한편, 연쇄극의 상연 및 연극 운동 역시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임자 없는 나룻배> 공개
1932년은 무엇보다 <임자 없는 나룻배>(이규환)가 공개된 해로 기억될 수 있다. 나운규의 <아리랑>(1926)과 더불어 일제강점기 이른바 ‘민족영화’를 대표하는 <임자 없는 나룻배>는 관객들은 물론 평단으로부터도 큰 호응을 얻으며 이규환이라는 영화 ‘작가’의 등장을 알렸다. 나아가 한동안 주춤했던 나운규가 배우로서나마 재기하는 계기가 되었고 문예봉이라는 스타의 탄생을 예고하기도 했다. 

박승필의 죽음
1932년은 단성사 개관 15주년이 되는 해였다. 그러나 새해 벽두 예상치 못한 부고 기사가 실리는바, 숙환으로 치료 중이던 박승필이 사망했음을 알리는 것이었다. 오랜 기간 단성사를 경영해 온 흥행사이자 ‘첫 번째’ 조선영화 <의리적 구토>(김도산)의 제작자로서 초기 조선영화계를 개척한 인물 중 하나라고 평가받는 박승필의 죽음은 한 시대의 종언을 고하는 상징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1932년은 회복의 기운 속에 미래를 기대하는 동시에 과거와 작별을 고하는 시기였다. 『신문기사로 본 조선영화 1932』에 실린 다양한 기사와 광고는 그러한 당시의 분위기를 살펴볼 수 있게 한다.
연구진
연구기획 및 진행: 이유미(한국영상자료원)
공동연구원: 최은숙, 조외숙, 이광욱
발간사
일러두기
1932년 신문기사 본문(해제 포함)
목록(기사, 극장, 영화사 및 단체, 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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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문의: 02-3153-20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