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의 참혹한 기억을 안고 뉴욕으로 돌아온 우체부 야곱 싱어(팀 로빈스)는 현실과 환영의 경계가 무너지는 심리적 지옥을 겪는다. 전쟁터에서 자상을 입고 후송된 그는 일상으로 복귀한 뒤에도 지하철 역사의 기괴한 형상들, 자신을 뒤쫓는 정체불명의 차량, 병원 복도에서 마주치는 설명 불가능한 존재들에 시달린다. 지하철, 병원, 거리와 집은 더 이상 안식의 장소가 아니라 불안과 침투의 공간으로 변하고, 그의 세계는 서서히 파편화된다.
영화는 이 악몽의 원인을 쉽게 환원하지 않는다. 전쟁 트라우마, 군의 비밀 약물 실험에 대한 의혹, 죽음의 문턱에서 흔들리는 의식이 서로 겹쳐지며 야곱의 현실을 잠식한다. 에이드리언 라인은 컴퓨터 그래픽에 기대지 않은 특수효과와 저프레임 촬영을 통해 비정상적인 신체 움직임과 차갑고 탁한 도시의 질감을 효과적으로 만들어내어, 불안을 감각적으로 전달하는데 성공한다. <야곱의 사다리>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사라지지 않는 폭력, 그리고 국가 권력이 개인의 신체와 지각 속에 남기는 균열을 파고드는 영화다. 복원된 4K 버전으로 상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