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률을 위해서라면 자극적인 방송도 마다치 않는 ‘시빅 TV(채널 83)’의 사장 맥스 렌(제임스 우즈)은 어느 날 필터링되지 않은 고문과 살인이 난무하는 정체불명의 방송 ‘비디오드롬’의 신호를 수신한다. 이 기이한 영상에 매료된 라디오 호스트 니키 브랜드(데보라 해리)와의 관계 속에서, 맥스는 비디오드롬의 근원을 추적하다가 신호에 노출될수록 현실과 환각의 경계가 무너지는 기괴한 경험을 하기 시작한다. 비디오드롬은 단순한 영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시청자의 뇌에 종양을 유발해 지각을 왜곡하고, 끝내 육체와 행동을 매체 시스템의 일부로 조작하는 침투적 장치였다. 안경 회사로 위장한 스펙타큘러 옵티컬의 음모 속에서 맥스의 복부에는 비디오테이프를 삽입할 수 있는 틈이 생기고, 그의 손은 금속과 살점이 융합된 권총으로 변모하며 그는 ‘새로운 육체’를 향한 파국적인 투쟁 속으로 밀려 들어간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는 미디어를 인간 감각의 확장이 아니라, 인간의 신체와 의식을 직접 조작하고 변형하는 ‘접속’의 도구로 밀어붙인다. 이 작품은 이번 기획전의 '접속' 섹션을 대표하는 사례다. 1960년대의 물질이 몸 내부에서 지각을 흔드는 물질적 트립이었다면, <비디오드롬>의 비디오 신호는 몸 바깥의 회로가 살점 속으로 침투해 감각 체계 자체를 변형시키는 과정을 보여준다. “새로운 육체 만세(Long live the new flesh)”라는 마지막 선언은, 신체의 주도권을 기계와 신호에 내맡긴 인간이 도달하는 파멸적인 진화의 예언처럼 들린다. 4K 복원버전으로 상영한다.
[강연] 강연명: 걸쳐 있는 몸 : 카메라, 텔레비전, 노이즈 일시: 4월 11일(토) 12:30 <비디오드롬> 상영 후 내용: 몸이 외부의 병리적인 물질에 의해 더럽혀지고 절단되는 결합과 변형의 공포는 20세기 크로넨버그 영화의 중핵을 이루는 산물이었다. 그의 비전은 오늘날의 이미지와 신체를 둘러싼 환경의 예언이었던 걸까, 단지 지나간 유행이었던 걸까. 혹은 유행과 호들갑 사이의 또 다른 가능성을 가리키고 있던 걸까? 더 이상 신체가 외부의 물질과 결합되지도 절단되지도 않는 지금의 조건에서 텔레비전과 몸은 어디에 위치하고 있을까? 강연자: 김병규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