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정신치료 장치 ‘DC 미니’는 타인의 꿈을 들여다보고 공유하게 만드는 혁신적 도구이지만, 시제품이 도난당한 뒤 그 가능성은 곧 재앙으로 바뀐다. 연구원 치바 아츠코는 꿈속에서 ‘파프리카’라는 또 다른 인격으로 활동하며 환자들의 무의식에 개입해 왔지만, 장치가 악용되면서 꿈은 더 이상 개인의 내면에 머물지 않고 현실의 표면을 침식하기 시작한다. 거리와 건물, 사람들의 몸은 정체불명의 꿈의 퍼레이드에 잠기고, 도시 전체는 무의식이 외부 세계로 범람하는 거대한 감염 지대로 변모한다.
곤 사토시의 <파프리카>는 꿈과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기술적 인터페이스가 집단적 무의식과 결합할 때 지각의 체계가 어떻게 붕괴하고 재편되는지를 보여준다. 이 작품은 ‘조립’ 섹션에서 가장 화려하고 편집증적인 영화다. 곤 사토시 감독은 매치 컷과 유동적인 화면 전환을 통해 공간, 꿈과 현실, 기억과 환영의 경계를 감각적인 연쇄로 이어 붙이며 이질적인 층위들을 하나의 흐름으로 조립한다. 영화를 관통하는 기괴한 퍼레이드 시퀀스는 단순한 볼거리를 넘어, 욕망의 파편들이 끝없이 증식하며 행진하는 현대의 집단적 무의식을 형상화한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하라사와 스스무의 OST는 불길한 퍼레이드가 쉽게 사라지지 않도록 우리를 붙잡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