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무지에서 정체불명의 검은 모놀리스와 마주한 유인원은 처음으로 도구를 사용하고, 그 한 번의 도약은 수백만 년 뒤 우주를 항해하는 인류의 시간으로 이어진다. 이후 영화는 달의 클라비우스 기지에서 발견된 모놀리스와 목성으로 향하는 디스커버리 원호의 항해, 그리고 인공지능 HAL 9000과의 갈등을 따라가며 인간 진화의 단계를 거대한 우주적 스케일 위에 배치한다.
스탠리 큐브릭의 이 작품은 단순한 SF 영화라기보다, 영화 매체가 지각의 한계를 어디까지 밀어붙일 수 있는지를 시험한 원형에 가깝다. 인류사적 연대기라는 거시적 구조를 취하면서도, 그 세부를 설명 대신 이미지와 침묵, 음악의 조립으로 치환해 나간다. 1968년 포스터에 새겨진 ‘The Ultimate Trip’이라는 문구는 이 영화가 당대 사이키델릭 문화 속에서 어떻게 수용되었는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 작품의 진가는 환각의 재현이 아니라, 지각 자체를 새롭게 조직하는 데 있다. 더글러스 트럼블의 슬릿-스캔 기법으로 구현된 ‘스타게이트’ 시퀀스는 빛과 추상적 패턴을 통해 관객을 장악하며, 단순한 감각의 확장을 넘어 지각의 틀을 뒤흔들려 한다. 이 작품은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지각을 새롭게 구성해보려는 큐브릭의 거대한 야심으로도 읽을 수 있다.